한 사람의 생활인으로서 먹고 사는 일에 정신을 빼앗기다보니 대학시절에 만사제치고 쫓아다녔던 성당에서 조금씩 멀어져가고 있다. 이젠 그나마 주일미사 중 강론시간만 되면 졸기가 일쑤다. 집사람이 옆에서 꼬집고 때리고(?)하여도 소용이 없다.
반성을 해본다. 결국 강론시간만 되면 사제의 강론에 무감각해지는 자신을 발견한다. 그 이야기들에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는데 문제가 있는 듯….
현 체제에 비판을 하는 정치적 얘기이거나 저 멀리 떨어져 있는 것 같은 거룩한 하늘나라의 얘기들이 어찌 말씀하시는 분들의 삶과 일치 하지 않는 것 같은 착각이 들어서 내 마음속에서 거부감이 일어나곤 하니 졸릴 수밖에.
말이 나온 김에 부끄러운 얘기를 하나 더 하자. 고백성사를 보고 나와서는 또 거의 유사한 죄를 짓곤 하는 자신이 한심스럽고 부끄러워서 성사를 보기가 무척 부담스럽던 시기였다. 고백성사 본지도 오래되었고 하여 바쁜 직장 일과 중에서도 큰마음을 먹고 저녁 시간에 잠시 틈을 내어 근처 성당에 회사 작업복을 입은 채로 찾아갔다 물론 마음의 부담을 가지고서 말이다. 그러다보니 고백성사를 보면서 더듬거리며 시간을 끈게 큰 실수였다. 성사를 주시던 신부님께서 나하나 때문에 성사를 보려고 기다리는 다른 분들을 돌려 보낼 수 없으니 그만 나가라며 냉정하게 고백소 창문을 닫아버리시는 게 아닌가. 참담한 심정이 되어 회사에 돌아왔으나 일이 손에 잡힐리 만무였다.
며칠을 곰곰이 생각해보니 또 하나의 평범한 진리가 눈앞에 나타났다. 이제는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이 사제에게 중요한 게 아니라 남아있는 아흔아홉 마리의 양의 관리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또한 미리 고백성사준비를 해 유창(?)하고 신속하게 성사를 보지 못한 자신을 스스로 다음과 같이 타이르느라고 며칠을 끙끙대었다.
『세상은 변하였다. 너도 변하지 않았느냐? 대학시절에는 물불 안 가리고 영원히 사랑을 실천할 듯이 하더니 지금은 회사에서 능력을 인정받고 싶어 온통 일에 파묻혀 지내며 지난날과는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지 않느냐』고. 『왜 사제들은 교통이 혼잡한 서울과 같은 도시에서 시간의 절약과 피로를 막기 위해 고급승용차를 타서는 안 되느냐고. 왜 성당의 유지 및 건축헌금을 많이 내는 교우들에게 조금이라도 시간을 더 할애하는 것이 합리적이지 않느냐고. 또 사목활동을 원활히 하기 위해서 사제관을 조금 넓고 안락하게 짓는 것이 필요한 것이 아니냐』고.
그러나 설명하기 곤란한 다른 모습들이 떠오른다. 매년방학이면 한 달씩 역전에서 구두를 닦고 난지도에서 그곳 주민들과 함께 쓰레기 수거작업을 하고, 하루 13시간씩 공장에서 일하던 신학생 친구人, 그는 뒤늦게 수도원에 들어가 내년이면 부제품을 받는다.
또한 담배는 한사코 「한산도」만 피우시고 외출시에는 꼭 시내버스만 타고 다니시면서도 얼굴에는 항상 미소가 떠나지 않던 □신부님.
고스톱을 기가 막히게 잘 치셔서 읍내 불량배들을 고스톱으로 낚아(?)읍내를 조용하게 만든 덕분에 경찰서로부터 감사의 말을 들었던 ○신부님.
이분들은 분명 이 시대에 맞지 않는 분들의 모습인데도 어째서 나는 이분들에게 친밀감과 평안함을 맛보는 것일까?
혼란함 속에서 시간이 흐른다. 그러나 결국 나는 하나의 결론에 이른다. 나는 분명히 내 부모님과 같은 사제를 원한다고. 우리의 잘못을 엄히 꾸짖고 우리를 위해 근실하고 우리와 함께 기뻐하는 사제들을. 비록 그러한 모습의 사제들이 오늘의 시대에 뒤떨어진 모습이라 하더라도 나는 기꺼이 그분들을 위해서 기도하며 따르리라고.
마리아와 마르타의 오빠가 죽자 한걸음에 달려가 비통한마음으로 눈물을 흘리시던 예수님(요한 11.28~37)의 모습이 다시 가슴에 와 닿는다.
김사욱 <서울시 동작구 상도4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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