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산 관광
관광버스가 달린다. 꿈과 낭만을 가득 싣고 설악산으로 달린다. 예서 제서 까르륵 소리가 들린다. 모든 것이 기쁘기만 할뿐、몸도 마음도 가뿐하다. 한계령을 오르며 와!와! 탄성이 터진다. 좋기도 좋을시고 하느님 지으신 저 산과 나무、하늘 향해 치솟은 바위들의 조화가 그저 신비로울 뿐이다. 버스에서 내려 심호흡하니 코 구멍을 가득히 메우며 들어오는 상큼한 내음、가슴이 활짝 열리고 공해에 찌들린 폐의 구석구석에 새 기운이 돋는구나! 오색의 약수 한잔 찰찰 넘치게 따루어 입 안 가득 부으니 짜르르 목줄기를 타고 넘어가며 노폐물을 말끔히 씻는구나. 와、좋다! 좋아!
설악동을 한 바퀴 휘돌고 방안에 다리 쭉 뻗고 누우니 세상 걱정 모두 사라지고 그저 좋기만 하도다. 다음날 폭포를 구경하고 케이블카 타고 산위에 오르니 신선이 따로있나、이내 몸이 신선일세! 아! 이 아름다운 고장에서 영영 세세 살았으면 얼마나 행복할까! 굴뚝마다 뿜어대는 매연、빨빨거리며 달려가는 자동차마다 꽁무니로 시커먼 가스를 뿜어대는 저 도시를 떠나 언제나 이곳에서 신선이 될 수 있으려나!
2박3일의 구경을 마치고 돌아가는 버스에 몸을 싣는다. 설악산아 안녕히! 달리는 차안에서 내려다보이는 집들、거기에 사는 사람들은 얼마나 행복할까? 부러움의 눈총을 보내며 쉰 목소리로 노래 부른다.
관점의 차이
설악산에서 3㎞정도 떨어진 마을에 대를 이어 사는 농부가 있었다. 그는 매일 중얼거린다. 『나는 저 버스를 타고 도회지에 나가기를 펴고 살아봤으면…. 여기서는 세상사는 재미가 없어. 매일 그 타령이니 출세하려면 도시로 나가야해. 암! 가야지、가야하고 말고!』
그에겐 도회지가 꿈이다. 그에게 설악산은 신비스러운 곳도 아니다. 아름다운 곳이 설악산이라고 누가 말해도 이해가 안 간다. 여기에 행복이 있다고 말하는 사람에게 별 인간을 다 보겠다면 비웃음을 던진다.
무덤의 속성
설악산 근처에서 평생을 살아봤으면 소원이 없겠다는 사람도 막상 도회지를 떠나 설악산 근처에 집을 짓고 살다 보면 몇 해 못가서 산의 아름다움에 대해 감각이 둔해진다. 그저 그럴 뿐、신비감에 젖어 매일 심호흡을 하지 않는다.
도회지를 그리워하는 사람은 막상 먼지투성이인 도회지에 나가 살다보면 도회지가 주는 좋은 것을 다 잊어버리게 된다. 감정이 무뎌져 버린다. 볼 곳도 많고 먹을 것도 많아 좋다던 생각이 차츰 불평으로 바뀌어 진다.
사람은 한곳에 머물러 있을 수 없다. 감정도 변화한다. 무디어지게 마련이다. 전쟁 시에 사람을 처음 죽였을 때는 양심에 가책을 받을 것이지만 계속해서 치열한 전투를 하게 되면 사람 죽이는데 가책을 느끼지 않을 것이다. 도둑놈도 맨 처음 남의 물건을 훔쳤을 때는 심장이 두근두근 대지만 계속하다 보면 감정이 무뎌져서 세상물건이 다 내 것인 양 생각될 것이다.
신앙과 무딤
맨 처음 교회에 입문하여 열성을 다해 교리를 배우고 영세하고 나면 황홀경에 빠진다. 하느님이 너무 좋아 밤잠도 설치고 기쁨과 평화、행복이 가득하다. 그러나 차차 시간이 흐르면서 무딤은 여지없이 찾아든다. 그러나 신앙에는 무딤이 있어서는 안 된다. 언제나 싱그럽게 유지해야 한다. 황홀경의 도취에서 변함이 없어야한다. 그러려면 인간 본연의 무딤의 원리를 부수기 위하여 노력해야 한다. 무디어지지 않으려고 기도를 하고 미사를 봉헌하는 것이다. 피정을 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무딤의 방지를 위해서 세상 마칠 때까지 성체성사를 거행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셨다. 그러나 많은 신자들의 신앙에 무딤이 찾아들고 있다.
그리하여 세례받기 전의 상태를 동경하기도 하고 하느님보다는 딴 곳에 마음을 두며 살아가기도 한다. 별로 좋은 것을 못 느끼고 점점 하느님의 손안에서 팔을 뺀다. 더 멋진 곳이 없는가? 짜릿한 황홀경을 맛 볼 곳은 어디일까? 나는 차지하리라、나는 행복하리라、외치고 또 외치며 이 곳 저 곳을 기웃거린다.
그러나 선조들은 말한다. 『우리가 이미 경험했거늘 주 예수와 함께 함이 제일일세. 새로운 믿음의 불을 지펴라. 기도하라. 미사를 매일 봉헌하라 그리고 이웃을 사랑하라. 이리하여 다시 주님을 찾거들랑 다시는 너의 마음에 무딤이 있어서는 안 될 것임을 매일 매일 다짐하라』
요즈음 신흥종교에 대한 교회 내의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크다. 그래서인지 주교님들도 신흥종교와 특히 여호아의 증인에 관한 특별 강의를 들으신 것으로 알고 있다. 그 뿐 아니라 전국의 많은 본당에서는 노길명(고려대) 교수와 최배용(전 여호아의 증인 감독자)씨의 강연회를 다루어 열고 있다.
그들에 의하면 여호아의 증인 신자수의 70%쯤이 천주교신자들로 구성되어 있다고 한다. 참으로 충격이 아닐 수 없다. 그러면 왜 천주교 신자들 중 많은 이가 이토록 방황하는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님이신 너희 하느님을 사랑하라』(마태22、37~38)시는 주님말씀에 방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무디어지길 좋아하는 인간의 만음을 다스리지 못해서일 것이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주님을 위해 목숨까지 바친 순교자들에게서 그 해답을 찾도록 노력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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