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초가 되니 소원했던 일가친척들이 얼굴을 마주보는 기회가 생긴다. 일년중에서 그래도 가족의 유대를 가장 돈독하게 느끼게 되는 계절이 바로 이때인 것 같다. 그간에 멀어졌던 친척들의 소식을 듣고, 바쁜생활에 쫓기어 너무 소홀했던 집안 어른들에게 인사도 차리게 된다. 이렇게해서 해가 거듭되는 동안「한집안」이라는 소속감과 유대감을 느끼며 한핏줄에 대한 전통적인 가족의식이 면면이 이어져 내려오는 모양이다. 이것은 확실히 우리사회 미덕임에 틀림없다.
◆「한집안」의 소속감
그런데 나는 가끔 우리의 가족개념이 지나치게 폐쇄적이 아닌가 생각해볼 때가 있다. 일전에 어느 신문칼럼에 어떤 고아의 이야기가 실린 일이 있었다. 화상을 입은 아이를 외국인이 입양하여 행복하게 기르고 있다는 기사를 접하여, 한국에는 기독교를 믿는 신자는 많은데 기독교정신을 사는 진정한 기독교인은 없다는 내용이었다. 이렇게 한마디로 처리하기에는 우리 현실에 복잡한 요소들이 많기는 하나 여하튼 그 필자의 말대로 가정생활에서는 한국의 기독교인들은 가끔 비기독교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는 것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리스도의 가르침이 이땅에 들어온지 2백년이 되었어도 우리의 가족개념은 혈연의 짙은 관계를 벗어나서는 생각하기 어려운 次元에 머물러 있는 것이 현실이다. 가령 어린이 동화중에서도 대표적인 콩쥐ㆍ팥쥐의 계모는 험상 궂은 얼굴인데 계모는 예로부터 혈연 권외(圈外)에서 들어온 침입자로 인정사정없는 냉혹한 인간이라는 고정관념이 있기 때문이다.
이에 비하면 기독교의 전통이 살아있는 서구사회에서는 가정도 하나의 열린 사회로, 혈연을 초월한 인간가족개념을 보여주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가정도 열린사회
얼마전 우리대학에 교환 교수로 와있던 미국인 P교수는 한국고아를 세명이나 입양하여 한가족을 이루었다. 우선 미국에서 처음 입양한 아이가 한국아이였다. 그 아이가 아홉살이 되자 아이의 고국인 한국에 와서 생활하는 기간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으로 교환교수를 한국에 신청했다. 이곳에 와있는 동안 그교수 내외는 두아이를 차례로 입양했다. 처음에는 두살난 아이, 다음에는 6주밖에 안되는 갓난 애기였다. 부임당시 P교수는 정확한 미국 사람답게 아침에는 9시에 출근하고 저녁에는 5시에 퇴근하는 모범교수였다. 그런데 어느날인가부터 아침출근이 늦어지고 오후 귀가가 일러졌다. 부인하고 둘이 교대로 밤을 새워가며 어린애기를 돌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주위에 있는 한국교수들은 P교수의 심정을 이해하기 어렵다고 했다.
『왜 사서 고생이지?』
아이 기르는 재미를 위한 것이라면 하나나 둘로 족하지 않은가. 뭣때문에 셋씩이나…. P교수는 거기에 대해서 별로 말이 없었다. 단 한마디, 셋까지는 자기 능력으로 감당할 만하다고 했다.
또 한가지 예는「빠리」에 있는 프랑소와즈네 가정이다. 프랑소와즈는 한국소녀로 여덟살 때 이집에 입양되었다. 그 가정은 이미 다섯명의 자녀가 있는 집안인데도 한국고아를 입양한 것이다.
◆하느님 앞에 우리는 한가족
이 부모는 한국소녀를 가족으로 맞기 위한 수속을 하면서 여러가지 준비를 했다. 우선 한국을 알기위해 한국 유학생을 소개받아 친구가 되었다. 그리고는 한국고아원에서 입양을 기다리고있는 소녀(한국이름. . 금순)에게 한가족이 되는 마음의 준비를 시키기로 했다. 어떻게 하면 소녀가 프랑스의 식구들과 한가족이라는 것을 피부로 느낄수 있게 할 수 있을까.
철도청에 다니는 아버지는 다분히 시인기질이었다. 커다란 종이에 새빨간 사과를 하나 그렸다. 그리고는 이런 글을 썼다.
『이 세상은 맛있는 사과, 함께 나누어 먹어야하는 사과다』
그리고는 프랑스의 가족, 할머니 부모, 5자녀들과 소녀까지 9명의 사진과 이름을 그림 속에 적어넣었다. 한국에서 사과그림을 받은 소녀는 자기이름과 사진이 가족과 함께 있는 것을 보고 무척 흡족해했다. 그리고는 잠자리에서도 그 그림을 손에서 놓지않고 매일 열심히 사진과 이름을 맞추어 보곤했다.
드디어 소녀가 탄 비행기가「빠리」의 공항에 도착하는 날이 왔다. 온가족이 비행장에 마중 나왔다. 아버지는 한손에 빨간 사과를 들고 있었다. 승객들이 쏟아져나오자 아버지는 사과를 든 손을 번쩍 쳐들었다. 멀리서 한 소녀의 얼굴이 활짝 웃었다. 소녀는 아무런 주저없이 사과를 향해 달려왔다. 그들은 더이상 말이 필요없었다.
지난번「빠리」에 다니러 갔을 때 친구와 함께 그 댁에 초대를 받아갔다. 이제 프랑소와즈는 국민학교 5학년생이었다. 그늘없이 밝은 표정으로 학교에서 일어난 일을 얘기하는 모습에서 이 가정의 따뜻한 사랑의 분위기를 맛볼 수 있었다. 이것이 바로 크리스찬 가정이구나 생각했다.
하느님 앞에 우리는 모두 한가족, 그리고『이 세상은 함께 나누어 먹어야하는 맛있는 사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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