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배, 제발 좀 알려주세요. 큰일났다구요』다급한 목소리가 귀를 때렸다. 유난히 목소리가 쟁쟁한 K방송 J기자의 다섯번째 전화였다. 『이형 어떻게 좀 해봅시다. 이 형이 모를리가 있어요』갖가지 수법으로 공략하는 기자들의 전화공세 속에서 하루가 어떻게 흘러갔는지도 몰랐다.
지난해 12월 24일, 기자들이 그렇게도 알고 싶어했던 것은 김수환 추기경의 성탄절 전야미사「행선지」였다. 3년전 성탄전야 난지도「아기들의 집」에서 시작된 매스컴의 야단법석은 3년동안이나 내리 이어지고
있었다. 좁디좁은 공간에서 설치는 매스컴의 횡포덕분에 당시 난지도의 미사는 야단법석을 이루었다. 조용히, 작은 이웃들과 성탄을 축하하기 위한 김 추기경의 의도가 처음부터 빗나가자 다음해부터 행선지에 대한 함구령이 내려졌고 그것은 곧 매스컴과의 신경전으로 이어지게 된다.
끊임없이 연결되는 방송, 신문사 담당기자들의 안타까운 전화를 받아주면서 나는 때론 사정하다시피 또는 냉정하게 추기경의 행선지를 모른다고 잡아뗐다.
실제로 내가 행선지를 안것은 24일 오후였고 그것은 함구령과 함께 주어진 특전이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알면 왜 안가르쳐 주겠어요. 정말 모른다니까요』로 시작된 내 대답은『안다해도 알려줄 수가 없다구요』라고까지 갈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철저한 보안조치 속에 김추기경이 행선지, 성모자애원을 향했을때 각 1대씩의 방송국과 신문사 차가 그뒤를 따라붙었고 결국 그들은 그렇게도 바라던「현장」을 찍고야 말았었다. 추위와 싸우며 수시간동안 교구청 밖에서 잠복, 현장을 찾아낸 그들의 취재혼(?)엔 교구청 실무진도 두손을 들 수 밖에 없었는가보다.
3년동안이나 이어진 교구청과 매스컴의「크리스마스 신경전」을 지켜보면서 올핸 부끄러움과 함께 유난한 부러움이 일었다.
『안된다. 아니 원하지 않는다』면 그것으로 그만인 우리의 취재자세는 부끄러움이었지만 교계제도 안에서 교회의 매스컴이 가져야하는 취재의 한계성, 그것은 일반 매스콤에 대한 무한한 부러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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