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알다시피 최초의 한국인 사제 김대건 신부는 중죄인처럼 처형되었다. 순교 당시의 나이는 겨우 26세. 그는 요즘의 이른바 군사재판에서 최고 극형을 언도 받은 것이다. 신앙의 자유가 허용되지 않았던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당한 순교였지만 인간이 그의 신앙과 사상을 위해 목숨을 바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때문에 순교는 그만큼 위대한 것이리라. ▲김대건 신부는 우리나라 사람으로서 서양 학문을 닦은 최초의 해외 유학생이었다. 따라서 그의 생애가 조금이라도 길었던들 교회의 기틀을 굳히고 조국의 근대화를 크게 촉진시켰을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의 죽음으로써 쇄국은 그만큼 길어졌고 겨레의 불행은 그만큼 가중되었다. 위정자들의 그릇된 역사 의식과 협량이 빚어낸 박해의 결과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는 김대건 신부의 순교사가 증명한다. ▲김대건 신부가 순교한 지도 1백28년이 흘렀다. 김 신부는 순교 79년에 이르러 복자위에 올랐고, 다시 24년 후에는 한국 사제단의 대주보로 정해졌다. 그를 대주보로 정한 것은 그의 신앙과 순교정신을 우러러 귀감을 삼자는 뜻일 것이다. 신학교 운동장에 김대건 신부의 석상이 세워진 것도 같은 뜻에서 비롯되었음에 틀림없다. 1백28년이 흐르는 동안 많은 역사적인 변천이 있었고 신앙의 자유가 허용된 지도 오래 되었다. 그런데도 그를 대주보로 모신 것은 여전히 그의 신앙과 순교정신만은 본받을 필요가 있다는 뜻일 것이다. ▲오늘의 현실에서 볼 때 내적인 신앙의 자유를 1백% 누리고 있음을 누구나 시인한다. 그러나 신앙을 생활하는 면에서는 반드시 그렇지도 않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동시에 신앙의 열심도도 상당히 해이해져 간다는 소리가 높다.
『수난과 고통이 없는 교회는 사도적 교회가 될 수 없다』는 말을 수긍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그리스도께서「로마」총독으로부터 민란죄(民亂罪) 혐의를 받고 가이파의 아문으로부터는 독성죄로 헤로데 궁전에선 미치광이로 판단되어 극형을 받은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극단으로 몰려간 수난과 고통 위에서 그리스도의 신앙은 온 세계로 전파되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
김대건 신부의 축일을 지내면서 오늘 이 시간에 김 신부가 사도생활을 벌일 경우를 상상해 보며 신심을 굳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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