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교회의 전례위원회에서 새로 마련한 미사 통상문 개정안이 발표되었다.
개정의 주안점에서도 밝혔듯이 어법상의 문제들을 바로잡고 원문의 뜻에 충실히 따라 성체성사의 의미를 충분히 살릴 수 있도록 했다니, 그 개정의 당위성이나 필요성은 이해하고도 남음이 있다.
그러나 다만 한 가지 아무리 바르고 고운 표준말이라 할지라도 그 쓰임에 따라서는 거칠고 매끄럽지 못한 사투리나 속어 혹은 비어보다도 오히려 느낌이나 의미 전달 면에서 못함이 있음을 생각할 때,이미 신자ㆍ비신자를 막론하고 전 국민적으로 일반화 되고 보편화된 「교황」이란 용어를 굳이 「교종」이란 말로 고친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합당치 못한 것 같다.
원어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그 해석된 의미를 따질 수는 없으나 교종이란 용어가 주는 어감상의 거부감은 떨쳐버릴 수가 없다. 비록 사람에 따라 다를 수는 있으나,이 용어에서 우리가 느낄 수 있는 것은 요즘 한창 독버섯처럼 번지고 있는 신흥종교에서 주로 사용하고 있는 교주나 교조와 같은 용어들이다. 그리고 이 말에서는 왠지 모르게 불교적인 냄새도 풍긴다. 그러나 이 모든 감성적인 문제를 보다 우리가 더욱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 것은 교황이란 호칭을 교종으로 고침으로써 초래될지도 모를 교황의 권위에 대한 실추 문제이다.
교황은 일반 자연종교나 개신교단의 목회자들처럼 단순히 가톨릭만을 대표하는 지위가 아니다.
그는 그리스도의 지상 대리자이며 전인류로부터 추앙받는 정신적 지도자이기 때문에 신자나 모든 성직ㆍ수도자, 나아가서는 국민들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교황의 권위란, 영신적인 의미에서 절대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우리가 어떤 인격체에 대해서 호칭을 사용할 때 그 인격체 자체가 변하는 것은 아니지만 사용하는 호칭에 따라 받아들이는 느낌이 너무 다름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역사적으로 볼 때도 많은 통치자들이 그들의 권위를 나타내는 호칭을 즐겨 사용하였으며 오늘날에 와서도 모든 분야에서 주어진 진책과 직위에 어울리는 호칭들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더군다나 지금처럼 많은 이단과 사탄의 세력들이 빛의 모습을 가장하여 교황의 권위에 도전하고, 2천 년 전 예수께서 당신 손으로 직접세우신 가톨릭교회를 모함하고 분열, 붕괴시키기 위해 날뛰고 있는 이때 우리들 스스로가 교황의 권위를 손상시키는 어리석음을 범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또 한 가지 생각해야 할 것은, 전국민이 인식하고 일상적인 용어로 사용하고 있고 또 교과서를 비롯한 많은 도서와 문서 등에서 표기하고 있는 「교황」이란 용어를 바꿈으로써 오는 혼란이다
물론 이러한 것들은 교회외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그렇게 대단하게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할지 모르나, 이 용어가 결코 가톨릭교회에서만이 사용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역시 간과해서는 안 될 문제임에는 틀림이 없을 것이다.
앞으로 개정될 미사 통상문에 대해선 성직자ㆍ수도자를 비롯한 신자들의 더 많은 의견들이 제시되고 수렴 될 것으로 여겨지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런 중요한 문제일수록 여유를 가지고 겸손된 마음으로 교회 공동체의 지혜를 모아야할 것이라는 점이다.
그러지 못하고 만의 하나라도 이 중차대한 문제를 일부 전문가의 자문이나 몇 차례의 공청회만으로 마무리 지으려한다면, 이는 참으로 위험한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 미사 통상문은 나라의 법을 뜯어고치듯 필요에 의해서 언제나 마구잡이로 고칠 수 있는 것이 아닐 뿐 아니라 그렇게 하는 것이 주님의 뜻에 합당한 마땅하고 옳은 일이 아니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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