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를 구함
묵시록 3장14절엔 라오디게이아 교회에 보내는 요한의 글이 나온다. 라오디게이아는 터키의 한지역이며 초대교회의 7대 교회중 하나가 있던 곳이었다. 지금은 지진으로 폐허가 되어있는데 이 도시를 중심으로 여러 개의 교회가 있었으니 특히 히에라폴리스는 온천이 있어서 옛날에는 번창한 도시였었다. 지금도 히에라폴리스에는 섭씨35도의 온천수가 펑펑 솟아나고 있다. 지금도 남아있는 목욕탕들의 규모는 당시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었는지 알 수 있다. 히에라폴리스는 국도에서 샛길로 들어서서 30분 정도는 달려가야 한다. 그런데 히에라폴리스로 향하는 길가에 마치 우리나라의 농촌처럼 여기 저기 집들이 정겹게 들어선 마을이 있다. 내가 그곳을 방문했을 때는 우기가 지난 다음이라서 햇볕이 유난히 따가왔다. 마을 어귀에서부터 다정한 느낌을 주는 것은 온 동리가 복숭아꽃으로 가득했기 때문이었다. 무릉도원을 연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그 마을엔 이상한 관습이 전해지고 있었다. 여자가 시집을 가고 싶으면 굴뚝에 마치 우리나라 소주병처럼 생긴 병을 시멘트로 단단하게 고착시켜 놓는다. 만일 어떤 총각이 장가 갈 생각만 있으면 돌멩이로 병을 깨뜨리면 된다는 것이었다.
버스를 타고 천천히 가면서 이집 저집의 굴뚝을 쳐다보니 여러 집의 굴뚝에 병이 세워져 있었다. 어떤 병은 깨어져있기도 했고 어떤 집에는 세 개의 병이 나란히 꽂혀 있기도 했다. 대체로 시집못간 처녀가 굉장히 많았다. 처녀들은 날이면 날마다 어떤 잘생긴 총각이 병을 깨뜨려 주길 바라고 있었다. 아니 잘생기지 못해도 총각이기만하면 좋아할 것이다. 어느 날 쨍!하며 병 깨지는 소리가 들리면 회색이 만연한 처녀는 탄성을 올리며 좋아할 판이었다.
여자를 구함
터키의 농촌 마을에선 남자를 애타게 찾고 있건만 우리나라에선 지난 여의도 농민대회 때에 이색 프랑카드가 출연했다하여 이러쿵저러쿵 소리가 들린다. 「수녀제도 폐지하여 농촌총각 구제하자」. 어찌보면 애교스럽다고 할 수 있으나 달리 생각하면 심각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 구호를 써가지고 나온 단체가 가톨릭농민회였다니 아마 농촌의 가톨릭청년으로서 짝사랑하던 여자가 수녀원엘 가버려 가슴에 한을 품고 있다가 그런 구호를 썼을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고 장가 못간 것이 부화가 나서 수녀님들에 대한 못마땅한 생각을 품고 그랬다면 이는 참으로 불행한 일이다. 어쨌거나 한국의 농촌에서는 총각들이 여자를 구하고 있다. 아마 히에라폴리스의 마을처럼 병을 굴뚝에 꽂아 놓아야 장가간다면 우리 농촌의 굴뚝은 병들로 가득찰것이며 소주장사는 지금보다 더 더욱 잘 될 것이다.
『어느 나라 어느 지방에선 여자가 부족하고 어딘가에선 남자가 부족하니 이 어찌 고른 세상이랄 수 있을까?』하고 푸념해보기도 하지만 알고 보면 그것은 하느님 뜻이 아니다.
극복의 길
역사 이래 수많은 전쟁에 인류는 시달려 왔다. 그로 인해 수많은 인간이 죽어야 했다. 특히 남자들은 시대를 잘못만나서 그 시대의 제물이 되었다. 만일 그들이 10년 후에만 태어났다해도 그런 비참한 꼴은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어쨌든 남자가 그리도 많이 전쟁으로 죽어갔건만 전 인류를 놓고 볼 때 남녀의 수는 항상 반반을 이루었다. 그리하여 자연스럽게 결혼은 성사될 수 있었으며 그로인해 인류는 이렇게 20세기를 맞이하고 이제 멀지 않아 21세기를 기다리고 있다.
지금도 어느 나라건 남녀의 수는 비슷비슷하다. 자연스럽게 결혼이 성사될 수 있는 여건을 하느님께서 주셨다. 그런데 그 분배를 인간 스스로 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만 하더라도 지금까지 농촌에 대한 사람의 정책이 부족하였기에, 젊은이들 특히 처녀들이 도시로 도시로 도망쳐 나가야만 했다.
농촌은 사람 살만한 곳이 못 된다는 인식이 자연스럽게 사람들의 머리 속에 가득해졌다. 이는 정치가들의 잘못이었다. 물론 우리 모두의 잘못이기도 하다. 그러나 정치를 올바로 인도하지 못했으니 말이다. 이제라도 농촌사람들에게 의식주의 특혜를 주는 정책도 펴야함은 물론이고 우리 모두의 사고의 변화, 즉 삶의 의의에 대한 새로운 가치관을 심어주는 교육을 어떤 방법으로든 서둘러서 실시해야 할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노동의 신성함에 대한 재인식, 제값받기 운동, 농촌에 대기업의 작은 하청공장 유치로 농한기에 일할 수 있는 여건마련 등이 해결에 작은 도움은 될 것으로 생각한다. 교회가 할일은 바로 사회의 어려움을 해결하는데 최선을 다 해야 함이다. 우리부터 이러한 일에 앞장서야 할 것이다. 서울의 아파트 한 평 값이 7~8백만 원이라니 농촌사람에게는 어안이 벙벙할 뿐이다. 한섬지기 농사짓는 사람의 일년 수입이 고작 한 달에 20여만 원이라면 누가 농사를 지을 것이며 누가 시집을 온다고 할 것인가? 교육과 의료에 대한 획기적인 정책과 농촌과 도시간의 경제분배의 원만한 해결이 선행되지 않은 한 우리의 선진국 행세는 요원할 뿐이다.
정부는 재벌에 수천억 원를 투자하며 그 돈을 국민세금으로 충당해 주는 데는 하해와 같은 마음을 가졌지만 농민의 복지를 위해서는 아직도 부족한 정책을 펴고 있음이 사실이다.
종교 역시 사랑은 앞세우되 도시와 농촌의 실질적인 사랑의 실천 신앙은 구체화되고 있지 않은 형편이다. 우리 모두의 분발이 요구되는 시대에 와 있음을 깨달으며 살아가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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