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온 뒤에 죽순 자라듯이 하늘로 치솟는 고층건물에 둘러싸인 교회의 초라한 모습을 바라볼때 우리는 여러가지 생각에 잠기지 않을수 없다는 말을 언젠가 한 일이 있다. 물론 눈에 보이는 건물이 교회의 전부는 아니겠으나 그것이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한 역사가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너무도 달라졌다. 가장 아름다운 집도 아니요 가장 높은 집도 아니요 한 도시의 중심은 더욱이 아니요 생활의 중심 또한 아니다. 시대는 흐르고 역사도 변천하는 것이 당연하겠지만 이 균형은 너무도 달라졌다. 이런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 하고 스스로 물어보았을때 그 대답은 대단히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된다. 현대문명을 물질적이고 인간 중심주의적이라고 단정하고 멸시해버리면 어떨까 혹은 반대로 교회도 금력과 권력을 총동원하여 가장 화려한 성전을 현대도시의 한가운데에 건설해보면 어떨까. 그러나 이것도 저것도 훌륭한 해결은 못되는것 같다. 암석처럼 굳어버려도 쓸모가 없고 냇물처럼 흘러보려도 것잡을수 없는 일이겠다. 눈에 보이는 교회와 눈에 보이지 않는 교회와의 균형이 이처럼 깨어진 시대에 살고 있다는 슬픔을 금할길이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느낌이 가장 심한 곳은 서울의 한가운대에 있는 명동성당일 것이다. 자세한 계획은 아는바 없지만 표면에 나타난 것만으로는 이곳을 드나드는 사람으로 하여금 복잡다단한 생각을 금할수 없게 한다. 역사적인 건물이니 보존해야 한다는데는 수긍이 간다. 그러나 왜 그렇게 성급하게 서두르는것인지는 이해가 안간다. 본시「보존」이라는 것은 여성적인 일이어서 조용하고 오래걸리는 일이며 따라서 인내와 희생이 수반되는 일이라고 하겠다. 내 생각 같아서는 더 오래두고 준비하고 계획해서 조용히 추진했으면 어떨까 한다. 오래된 건물이기는 하지만 하루 이틀에 쓰러지지는 않는다고 본다. 너무 서둘렀기 때문에 여러가지 무리가 생기고 이러니 저러니 하는 잡음도 생겨서 선량한 신자들은 되도록 분심 잡념이 생기지 않도록 눈을 가리고 귀를 막아야 하는 인내심을 길러야하게 된 것 같다. 성당이 하느님의 집이라는 것은 대체로 알고있는 일이다. 그러나 하느님의 집을 마련한다고 지나치게 강조하면 마치 길거리 거지에게 집을 마련하려는 부호의 태도 같아서 도리어 하느님을 욕되게 할는지도 모르겠다. 사실은 하느님에게는 집이 필요치 않다는 것을 늘 염두에 두어야 할것이다.
사소한 일이고 말단의 일이라고 보아 넘기면 그뿐일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해도 씻어버려지지 않는 집념같은 잡념이 나에게 있다. 그것은 이 일의 비창조성이다. 보존과 창조는 모순되는 것이라기 보다는 서로 의존하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보존없는 창조나 창조없는 보존은 모두 결함있는 것이라고 하겠다. 그러나 지금 우리 처지에 있어서는 어느 무엇보다도 창조가 요망되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만큼 보존에만 기울어진 일이 그렇게도 마음에 걸리는것 같다. 더구나 재료를 바꾸어서 보존한다는 것 즉 합석을 동판으로 교체한다거나, 목재를 시멘트로 만들어서 보존하는것(광화문)은 창조와는 거리가 먼 일이라고 하겠다. 막대한 금액을 들여서 경주의 석굴암과 꼭같은 모조품을 서울 어느곳에 만들었다고 하는데 이것도 창조성 없는 일이다.
아무런 창조성 없이 과거의 모습을 보존하고 고집하려는 것은 과거의 창조를 빌려서 현재의 권위를 옹호하려는 어리석은 꿈에 불과할 것이다. 이러한 권위와 독선이 근대세계의 눈을 가리고 있는 동안 창조하는 능력은 사라지고 보이지 않는 교회와 보이는 교회와의 균형이 깨진 것이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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