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천주교 주교단은 지난 5일 순교 복자 김대건 신부 축일을 맞아 교황 바오로 6세께서 1975년을 성년으로 선포하신 데 즈음한 사목교서를 발표하였다. 이 교서는 교황의 성년 선포 특별교서와 1971년에「로마」에서 개최된 전 세계 주교 대의원회인 주교 시노드가 채택한「세계 정의」라는 문헌과 여러 교황들이 선포한 사회문제에 관한 회칙들을 재강조하는 데 역점을 두고 우리 한국 교회의 모든 성직자, 수도자 및 평신자들에게 회개와 사랑과 쇄신으로 하느님과 화해하고 1975년이 참으로 하느님과 인간을 위한 성년이 되고, 세계의 정의와 평화와 사랑을 위한 성년이 되고, 특히 가난한 사람들과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을 위한 은총의 성년이 되도록 기도하고 봉사할 것을 강조하였다.
바오로 6세 교황께서는 전 세계에 보낸 성년 선포 특별교서에서 하느님의 뜻을 거역하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회개와 형제적 사랑을 호소하였고, 특히 금력과 권력을 가진 사람들에게 자신들만의 이익 추구에 사로잡히지 말고 정의롭고 인간다운 사회를 이 세상 속에 건설해줄 것을 호소하였고, 교회 내의 모든 신자들이 모범적 생활을 통해여 인간의 기본 권리의 존중과 사회 정의를 가르치고 모든 사람들이 사랑과 사회 의식과 평화를 깨닫게 하는 것이 교회의 의무와 책임이라고 강조하였다.
또한 교황께서는「제민족의 발전」회칙에서 평신자들의 자발적 참여를 촉구하면서 주교들의 책무가 이 같은 문제에 대하여 도덕적 규범을 가르치고 유권적 해석을 내리는 데 있다면 평신자들은 피동적으로 지침이나 명령만을 기다릴 것이 아니라 자발적인 창의와 계획으로 사람들의 정신과 풍습 사회 공동체의 법제와 조직을 그리스도화하는 것을 자신들의 의무로 생각해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71년의 주교 시노드는「세계 정의」라는 문헌에서 전 세계의 주교들은 다함께 불의한 사회 체제와 조직 구조 때문에 폭행과 억압을 당하며 고통 중에 있는 사람들의 부르짖음을 귀담아 듣고 또 창조주의 계획에 위배되는 죄악으로 말미암은 세상의 애원을 경청하여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억압 받는 이들에게 자유를, 괴로움을 당하는 이들에게 기쁨을 선포함으로써 인류의 마음 속에 현존하는 교회의 소명을 다시 깊이 인식하였다고 하고 있다. 또한 오늘의세계 곳곳에서 일하고 있는 억압적인 정치 세력과 이에 대한 반발에서오는 개인적인 폭력을 다같이 폭력이라는 점에서 죄악이라고 규정 지우고 인공유산 피임 강요 인신매매 노동 착취 유아와 노폐자와 병자의 유기 및 매스미디아의 거짓 보도 등을 큰 죄악이라고 지적하는 동시에 그 모든 죄악이 근본적으로 인간의 존엄과 기본 권리를 무시하고 유린하는 데서 비롯된다고 하였다.
또 故 요한 23세 교황께서는「지상의 평화」라는 회칙에서 한 사회의 공동선은 그 사회를 이룩하는 모든 사람들의 인간의 존엄성과 인권이 공권력에 의해 존중되고 수호되는 데서 비로소 달성된다고 하였다. 이와 같이 교회는 언제나 모든 사람들에게 그리스도 친히 가르치시고 수범하신 사랑을 강조하여 왔고, 모든 인간관계와 사회 조직에 대하여 특히 인간의 존엄성과 정의와 공동선을 역설하여 왔고, 현대 세계와 같은 타락과 긴장 속에서는 회개와 화해와 평화를 호소하고 있다. 교회의 목적이 인간의 구원에 있고, 그 인간이 지상의 정치 세계에 살고 있는 한 교회의 책무는 세상에 살고 있는 모든 개개인에게 관계되는 동시에 또한 그 정치 사회와도 관계되기 마련이다.
교회와 정치가 분리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 가운데는 이와 같은 관계를 깊이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교회와 정치는 각각그 1차적 목적과 영역을 달리하고 있다는 데 있어서 서로 구분되어야 한다는 것은 사실이다. 교회는 인간의 구원이라는 초자연 복리를 그 1차적 목적으로 삼고 있는 데 대하여 정치는 지상에서의 자연복를 그 1차적 목적으로 삼고 있다. 그러나 초자연 복리와 자연 복리는 궁극에 가서 서로 깊은 관계를 맺고 있는 불가분의 관계에 놓여 있다는 것을 이해한다면 교회와 정치가 서로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다만 교회가 관여해야 하는 자연 복리의 영역은 인간 구원이라는 초자연 복리와 직접적인 깊은 관계를 맺고 있는 부분, 즉 신앙과 윤리와 도덕에 관계되는 영역에 한정되어야 한다. 또한 그런 영역에 있어서는 마땅히 고차원의 목적을 지닌 교회가 정치를 지도할 의무와 책임을 지게 된다. 그러면서도 교회가 직접 정치에 관여하는 방법은 언제나 사랑과 기도와 봉사로서의 교회적인 방법에 의하여야 할 것이다.
그 사회의 불의를 지적하고 경고하는 것이 교회의 책무인 것과 같이 교회적 방법으로 그 시정을 촉구하는 것도 교회의 책무이다. 따라서 교회가 사랑을 잃으면 정치에 관여할 자격도 잃는다고 한 것이다.
교회는 사랑의 전파자이다. 사랑이 없는 자는 남에게 사랑을 줄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교회는 항상 스스로 사랑에 충만되어 있어야 할 것이다. 서로의 이해관계에서 날카롭게 대립하고 있는 현대 세계를 향하여 우선 교회는 정의와 평화를 호소하고 있다. 정의는 확실히 자연 사회의 모든 인간 질서의 기반이다. 그러나 그 정의만으로는 인간이 행복할 수 없고 마음의 평화와 초자연 복리를 얻을 수 없다는 데 유의하여야 할 것이다.
초자연 사회의 질서는 그 정의보다 차원이 높은 사랑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상의 행복과 평화도 이 사랑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다고 할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사랑과 교회가 지상의 행복에 얼마나 깊은 관계를 맺고 있는가를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 교회는 언제나 사랑에 충만하고 지혜를 갖추어야 하겠고 기도와 봉사와 솔선수범으로 국가 지도자들의 각성을 촉구하며 인류 구원의 사명을 다하는 데 전념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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