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 비가 오네요 저 성모당의 아까시아꽃이 떨어지려고 심술을 부리나 봐요』젬마의 안타까와 하는 소리에 나는 불현듯 까맣게 잊고 있었던 너 생각을 하며 막 배달된 잡지를 뒤적이고 있었지! 이거야 말로 웬 기적인가! 거기에 너의 이름 석 자와「아버지를 잃고 주님 품 안에」라는 멋진 수필과 거기에다 주소까지 박혀 있지 않는가.
혜미! 너가 가톨릭 신자가 되다니! 어쩜 같은 하늘 아래 그것도 여류 명사가 되어 이름을 날리고 있다니! 너 수필에 담긴 말과 같이『싱그러운 아까시아 계절 오월의 성월 마리아님의 보살피심』이런가. 이제 너와 나는 진정 자매로구나.
성모님 앞에서 무릎 꿇어 성호를 그으면 너는 익살스럽게 흉내를 내었고 내가 요령 없이 서투른 구변으로 너를 교우로 이끌려 하다가 너의 마음을 상케 하여 끝내는 화해도 없이 졸업해 버리지 않았던가.
먼 하늘 쳐다보고 한참이나 더듬어 올라가야 할 20년도 훨씬 넘는 옛날 그 성모당에서의 일들.
해방 후 처음 생긴 대학이라 교사 하나 제대로 우리 것이라고는 없는 그때의 실정 주교관 아래 신학교를 지금의 T중학과 같이 겹방살이 하지 않았더냐 공부야 어디서 하든 남녀공학이란 어색한 환경에 기가 질려 짖궂은 사내들을 피해 우리는 곧잘 성모당으로 올라가지 않았니? 혜미-너는 사내애들처럼 아까시아꽃을 포도송이처럼 따서 씹었겠지 나도 주고 말이야. 그 단맛 그 향기 지금 내 입 안에 가득한 것 같구나.
너 생각 나니 거기가 어디라고 고래고래 노래 부르다 쫓겨난 일! 그런 데서 너는 詩를 쓰고 그런 재주 하나 없는 나는 사내들이나 하는 공부를 하고 그런 너가 부러워 너와 매일 어울리지 않았겠니. 천주학쟁이란 소리 듣고서도 말이야.
이제 너와 나는 50 고개의 어머니, 그때의 놀던 숲은 여학교가 들어서고 따먹던 아까시카꽃들은 높이 뻗어 까많구나. 한 번 내려오려므나. 뜰에핀 장미 한아름 꺾어 들고 마리아님께 가보자꾸나 두 중늙은이 나란히 서서 화해와 재회의 기쁨을 묵주의 기도로써 꾸미자꾸나. 그리고 나서 한옆에 퍼질고 앉아 가톨릭 신자가 된 너의 심경을 낱낱이 이야기해 다오. 쌓이고 쌓인 해묵은 이야기로 밤을 새우겠구나. 오랜만에 잠이 다 안 오는구나 안녕. (너의 벗 마리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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