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농번기는 해를 거듭할수록 충력전이라 누구의 탓이라 할 것도 없이 주일미사 참여자가 격감하고 있다. 하기야 마을마다 탁아소나 차리고 일터에서는 유쾌한 라디오 소리로 그 뜻만은 신심을 도와주는 그런 것이라도 제공했으면 얼마나 좋으랴마는 이런 것은 모두 시골본당 사정으로서는 인력과 재정의 한계를 넘어선 문제이다. 농번기에 신부는 마당의 풀베기 아니면 참선이나 하기에 똑 알맞다. 사목 대책을 연구하자면 자연히 초본당 초교구 문제로 비약하기 일쑤이다.
그럴지라도 역시 교회는 인생과 진리의 빛이요 구원이라야만 하겠는데 지방교회도 그 지역에 그러해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부담감을 주는 문제가 자주 일어난다.
예를 들면 자녀들 때문에 쉴 새 없이 노동을 해야만 살 수 있는 가난한 과부가 수술이라도 받아야 할 병이 난다면 수술을 받아야 하겠는데 이런경우 개인으로는 도우기 곤란한 문제일지라도 명색이 사랑의 공동체인 교회는 이런 것쯤은 자체적으로나 제도적으로든지 해결할 줄 알아야 세상의 빛이 되고 구원이 될 것 같다. 그러나 이러한 일이 생길 때마다 어떻게 신부 혼자 이리 뛰고 저리 뛰며 형제애에 호소할 겨를과 힘이 지속되겠는가? 여기서 문득 저 구세사에 있어서의 십일조 생각이 난다. 사도시대에는 그 율을 훨씬 넘어서 부제직이 필요할 만큼 됐다고 한다. 그러다가 교권이 국권을 제압한 후로는 이미 그런 것은 생각마저 초월해 버린 듯하다.
지금 우리 본당의 형편을 놓고 생각해볼 때 우리가 지금 본당 밖을 향하여 정의를 부르짖는다면 그것은 우리 본당의 생존권을 위하여 구원을 요청하는 비명으로밖에는 들리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우리 교회 내에서 먼저 하느님의 정의를 꾸준히 구한다면 우리 교회는 미구에 세상을 구원할 수 있는 능력과 힘이 갖추어질 것으로 보인다. 루벤 지파이든 레위 지파이든 벤자민 지파이든 간에 이미 하느님의 백성이라면 받은 바 제 나름대로의 분야에서 똑같은 권리와 의무를 나눠 져야 한다고 생각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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