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본당 부인회원인 마리아 씨를 오랜만에 만났다. 병이라곤 모르고 늘 명랑하던 얼굴에 병색이 보이고 그 표정마저 우울해 보여 이런저런 얘기 끝에 이유를 물어 보았더니 낙태수술을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뒷끝이 좋지 않아 벌써 한 달째 병원에 다니고 있다는 것이다. 더욱 놀란 것은 마리아 씨의 체념에 가까운 이런 독백이었다.
『연년생으로 셋을 낳을 때까지만 해도 교회 가르침에 따른 셈이지요. 허지만 이번만은 어쩔 수 없었어요. 죄를 졌으니 성당에 나갈 용기도 없군요』
고개를 떨구고 괴로워하는 마리아씨와 헤어진 지 벌써 두 달. 언제나 밝은 표정으로 부인회 일에 앞장서오던 그녀의 모습을 성당에서 찾을 수가 없다.
그리고 지금은 나마저 자신의 일일 수도 있는 마리아 씨의 일을 생각하며 괴로워하고 있다. 그러면서 한편으론 인공유산을 금하는 대쪽 같은 가르침을 되풀이할 뿐 신자가 택할 수 있는 가족계획 방법을 가르치지 않는 교회의 소극적인 자세를 탓해 보기도 한다.
국가는 법까지 만들어 음성적으로 해오던 인공유산을 합리화시키고 곳곳에 가족계획센타를 설치해 부료로 피임시술을 해주고 있다. 또 여성단체들마저「애 안 낳기 해」라는 걸 만들어 대대적인 선전을 해대고 있건만 서울시내 도처에 있는 어느 가톨릭병원에서 소위 가톨릭적 가족계획 방법을 가르친다는 말을 과문한 탓인지 들어보지 못했다.
교회는 생명은 하느님이 주신 것이므로 인간이 빼앗을 수 없다고 인공유산을 금하는 것을 대부분 신자들은 알고 있다. 재작년인가 국가에서「모자보건법」을 만들었을 때 주교님들이 공동으로 이 법을 악법이라고 야단치면서 신자들은 이 법을 지키지 말라는 무슨 교서를 발표했다는 말을 성당에서 들은 기억이 난다. 그러나 일반 병원에선 별로 권하지 않는 주기법을 정확한 지식도 없이 사용하다 실패하고 윤리와 현실 사이에서 고민하는 신자가 내 주위만 해도 점점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가르침에는 실행이 따라야 하는 법. 사회가 온통 인공유산을 스스럼 없이 행하는데도 한 줌 양심을 지키기며 살려는 신자들의 고뇌를 열어주는 일에 교회는 왜 이다지도 게으른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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