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ㆍ25가 일어났던 50년 겨울, 평양에서 사목하던 신 목사는 아군의 진격으로 신앙의 자유가 생기자 신도들로부터 비웃음과 모멸을 받고 한국 정훈장교로부터 사상의 의심을 받아 끈질긴 추격을 받는다. 전에는 가장 존경 받는 목사였지만 함께 끌려갔던 목사님들은 괴뢰군들에게 총살을 당했는데 자기 혼자 살았기에 배반자로 낙인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 목사가 당하는 양심의 고통은 신도들의 차가운 눈초리나 규탄 정훈장교의 추적보다 더 깊은 데 있었다. 어느날 장교는『목사님 정말 신이 존재하오? 신이 존재한다면 이 엄청난 전쟁의 비극을 어떻게 설명하겠소』라고 질문하자 신 목사는 고개를 젓는다.『그럼 신을 믿지도 않으면서 하느님이니 천당이니 설교하는 당신은 위선자가 아니오』장교는 다그쳐 묻는다.
고통의 핵을 찔림 받은 신 목사는『바로 그게 문제요. 난 신을 믿지 않지만 만일 신이 없다고 하면 저 신도들의 고통과 불행은 더 클 것이오. 그게 내 고통이오』라고 비장하게 말한다.
사실 자기가 살게 된 것도 총살 직전에 신을 부정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미국과 한국에서 베스트셀러가 됐던 교포 김은국 (리차드 김) 씨의 소설「순교자」의 내용이다.
이 소설은 인간의 불행을 고발하여 신을 부정하려는 실존주의 사상이 짙은 작품이지만 인간 불행의 원인을 신에게 돌리려는 그릇된 사상을 논의하기보다 또 다른 것들을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
신을 확신하지 못하여 하느님과 만나지 못하는 신앙인, 성직자의 불행과 위선, 신념 없는 태도 등, 몇 달 전 어느 연수회장에서 비신자인 지성인으로부터 가슴 찌르는 말을 들었다.
『정의의 사도로서 양심의 지도자로서 여러분이 하느님과 상봉(相逢)이 부족하기 때문에 예언자적 사명을 완수하지 못하는 것이 아닙니까? 호수아ㆍ예레미아ㆍ다니엘ㆍ세레자ㆍ요한 같은 분들은 하느님과 밀접히 상봉했기에 정의를 살리고 진리를 지킨 것이 아닙니까?
공산주의를 쳐이기고 보다 잘 사는 나라가 되기 위해서는 살면서 그분의 뜻을 따르는 예언자적 순교자적 정신을 가진 분들이 많아질 때 가능합니다』
교회는 사회 정의 실현, 부정부패 시정, 인권의 선양 등을 위해 최선을 다할 사명을 갖고 있고 이를 위해 많은 희생과 고통을 지불해왔고 지금도 외치고 있다. 그러나 솔직히 말해서 우리 교회 안에 너무도 많은 부조리와 모순이 도사리고 있고 악의 세력이 침투돼 있는 것 같다.
내 교구, 내 본당, 내 단체라는 소아마비적 고루한 사고와 높은 담장 신 목사라는 다른 의미의 위선과 현실과의 타협, 빛의 아들보다 슬기로운 마름들, 헤아릴 수가 없다.
그러기에 보다 큰 공선과 공익을 위해 修身ㆍ濟家ㆍ平天下之本의 원칙도 중하지만 우리 교회의 장점이요 특성인 유일성과 보편성 (가톨릭)을 되찾는 것이 급선무일 것 같다.
한 성신 한 세례로 한 몸이 되어 한 분이신 하느님을 섬기는 우리가 한 마음 한 뜻으로 한 공동체를 이루어 얽히고 설킨 잡다한 감정이나 굳게 쳐진 단절의 장벽을 무너뜨려야 될 것이다.
우리 교회의 공식 명칭이「가톨릭」이 되지 못하고 하나가 되지 않을 때 과거 프로테스탄이 갈라졌듯이 적어도 내부의 분파작용이 일어날 것이고 악의 세력이 깊숙히 파고들 것이다. 그 어느 때보다도 교회 자신이 쇄신되고 하나가 되어 예언자적 직능을 완수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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