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운수사업을 하다가 빈털털이가 된 친구를 만난적이 있다. 영업용 택시를 몇대 굴리며 흥청대던 친구였는데 1주일 사이에 잇달아 발생한 교통사고로 왕창 망했다는것이다. 그래서 그는「운수(運輸)사업은 역시 운수(運數)사업」이란 결론을 내렸고 이젠 택시 근처에도 가기 싫다며 몸서리를쳤다. 이처럼 실패를 경험하면 사람들은 대개 실패의 원인이 된 자기자신의 결함과 실책을 탓하기 전에 모든것을 운수소관으로 돌려버리는 수가 많다. ▲인간의 힘을 초월한 천운에다 모든 책임을 떠맡겨버리면 우선은 위로가 될지 모르나 발전적인 태도는 결코 아니다. 대천명(待天命)에 앞서 발전지항적인 진인사(盡人事)가 있어야 한다. 교회나 국가사회의 발전과 번영의 관건도 그 구성원들이 발전지향성이냐 아니냐에 달려있다. 발전지향적인 특성으로 흔히 지적되는바는 다음과 같다. ▲첫째 자연에 대한 태도다. 자연에 대해 무조건 종속적인것이 아니라 자연을 조화시키고 나아가 자연적 장애를 극복하려는 태도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자연의 극복은 자연의 파괴를 의미하지 않는다. 어쨌든 산수화가 발달한 동양과 인체중심의 분석적인 회화가 발달한 서양의 차이는 그림 이전의 차이가 내재해 있는것 같다. ▲둘째로 시간에 대한 관념이 미래지향적이다. 복고조(復古調)의 퇴행만 읊어대는 과거지향이나 안일한 정체로 만족하는 현재지향이 아니다. 장래에 대해 체념하지 않고 높은 이상과 희망을 가지는 것이다. 비록 불운이 닥치더라도『운(運)은 우리들의 부(富)는 빼앗을수 있지만 우리의 희망과 용기를 빼앗을수 없다』고 외치는 태도다. ▲세째로 창의성이 있다. 특히 이점에선 창의성여부보다도 그것을 개발하고 발휘할수 있는 여건이 결정적인 문제다. 억압되고 위축된 인간에게서 바람직한 창의성을 기대하기란 나무에서 물고기를 구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20세기에 들어와서 공산정권이나 독재정권을 경험한 나라치고 인간의 얼이 담긴 창의성에 의해 올바른 사회발전을 이룩한 나라가 도대체 없다. 3류국가는 4류국가로 퇴행했을 뿐이다. 분위기가 기분에 맞을땐 생산성이 올라감은 과학적으로 증명되었고 젖소에게도 음악을 들려주었더니 젖이 많았다. ▲네째로는 성공의 동기가 강한점이다. 우리나라의 교육열이 높은것은 이 때문일것이다. 이 점은 활용할 가치가 있으나 가치관이 문제다. 모두가 고관(高官)이 되고 돈벌고 떵떵거리길 바라지「나중에 커서 사회에 이바지하는 인물」이 되길 바라는 부모가 드물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