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일상의 한계의식에 빠져 좌절할 때마다 모처럼 가정으로 돌아온 아빠가 좋은 아이들의 빛나는 얼굴과 매일 밤늦게 파김치가 되어 돌아오는 자식이 애처로워 무엇 한 가지라도 도움이 될 수 없나 안타까워하시는 노모의 근심이 엇갈려 더욱 나를 괴롭혔다.
나는 그때까지 15년 가까운 세월을 두고 교회를 등졌던 이른바 냉담자였으므로 내게 신앙의 기간과 열정, 생활과 열망을 순수하고 성실하게 회사일에 바침으로써 보람을 찾고 성과를 구했기 때문에 신앙생활의 가치나 의의보다는 개인적 자만이나 생활의 신념에 더 매달리고 있었다. 나를 에워싸고 있는 현실적 상황이 계속 악화되고 고민스런 발버둥이 계속되자 자식의 정신적 고민, 육체적인 피폐, 불안한 직장생활이 걱정스러운 노모의 기도가 시작되었다.
아득한 선대부터 이름나 시주로 불교를 신앙해온 집안에 시집 오셔서 이순의 나이가 되기까지 천주를 모르시던 어머니가 완고한 고집을 꺾고 십자가아래 무릎을 꿇게 된 전교의 씨앗은 이상스럽게도 열여섯에 세계를 받고서도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바로 교회를 등진 내게서 뿌려진 것이다. 내가 천주의 아들로 서약하고 신앙의 희열을 이기지 못해 남다른 영의로 매월 새벽기도를 다닐 때 어머니는 이것이 싫고 못마땅하셔서 죄진 사람처럼 조심조심 대청 문을 빠져나가는 내게다대고 늘 가시 돋친 나무람을 뒤딸려 보내시던 분이다.
교회를 멀리하기 십 수 년, 나의 신앙은 희미하게 퇴영되고 있었으나 하느님의 뜻이었는지 어머니를 교회로 인도하겠다는 집념은 질긴 불씨로 꺼지지 않았다.
14년 전 어느 날 어머니는 갑자기 동리성당으로 나아가 천주교 신자가 되셨으며 얼마 후에는 어머니보다 훨씬 더 완고하신 아버지께서 영세 하셨고, 그 후 한해 사이에 아내와 아들형제까지 한 성당 신자가 되었다.
내게 있어 이러한 변화는 지극히 작지만 하나의 기적이고 축복으로 생각되었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주일에 안식하지 않았다. 내가 어머니의 간절한 새벽기도를 자식에 대한 어머니들의 보편적인 정성쯤으로 여기면서 성당에 나가자는 권유를 차일피일 미루어 가고 있던 어느 날, 최초의 시련이 닥쳐왔다.
77년 여름에 물난리가 있었는데 그중 경기도 안양지역이 가장심한 피해를 입었다. 불과 몇 시간동안 쏟아진 집중호우로 많은 공장들이 물에 잠겼었는데 우리 공장이 그중 심한 편이었다. 공장가동은 꼬박 한 달간이나 중단되었다. 계약된 납품처들은 아우성을 쳤고 자금은 바닥났다. 물 빠지기를 기다렸다가 시작된 싯누런 진흙 제거작업만도 일주일이나 걸렸기 때문에 종업원들은 모두가 지쳐 있었다. 공장 분위기는 수마가 할퀴고 간 상처 못지않게 침체 되었다.
내게는 빠른 수해복구와 가동이 절실한 만큼 부도위기를 막는 일이 급했다. 거래은행에 수해상황을 설명하고 긴급 지원자금 타내랴 합자회사이자 주요 부품공급선인 일본회사에 당장 필요한 부품의 공수를 요청하랴 정신없이 이리 뛰고 저리 뛰어야 했다.
다행이 이런저런 지원으로 부도를 막고 정상조업도 재개되긴 했으나 그렇잖아도 허약하고 문제가 많았던 터였으므로 회사형편은 더욱 나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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