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여름이면 산으로 바다로 피서를 간다. 어린 소녀처럼 마음이 들떠 이것저것 준비하여 설악산으로 그가 떠난 지 몇 시간도 안 되었는데 비는 또 내리기 시작한다. 내가 몇 년 전 친구들과 설악산에 갔었는데 그때도 비가 오고 태풍이 불어서 우주복처럼 비옷을 입고 이산저산 올라다녔는데 그도 그때 우리처럼 그 꼴이 되겠구나 하며 설악산 풍경을 필림처럼 머릿속에서 그려보고 있는데 요란한 벨소리에 대문을 열으니 음반 월부값을 받으러 왔다. 어떻게 알았는지 딸애가 피아노 배우는 걸 알아가지고 피아노 명곡판을 자꾸 사라고 권해서 샀었는데 오늘이 그 돈을 주는날이다. 밥하는 아이가 가버린 지가 벌써 한 달이 넘었다.
처음에는 모든 게 절약이 되고 집안이 깨끗해진 것 같아서 좋았는데 건강이 좋지 않은 탓인지 별 할 일은 없어도 날이 갈수록 피로해서 견디기가 어렵다.그러나 여자란 집에서 살림하는 게 의미이기에 피로함을 참는다. 어느 때는 쓰러질 것 같으나 힘을 낸다. 이렇게 하여 생활한 게 벌써 한 달이 되어 아빠하고 약속한 한 달의 월급을 받는 날이 되어 밤 늦게 퇴근한 아빠의 저녁상 차리기보다는 엄마의 월급을 받으려나 하는 게 궁금하여 손부터 내밀었다. 그랬더니 일하는 것으로 보면 삼천 원밖에 줄 수 없으나 후하게 해서 오천 원 준다면서 종이 한 장을 쥐어준다. 너무나 인색한 월급이지만 기쁜 마음으로 받았다. 결혼 전 직장에 있을 때는 퇴근길에 언제나 친구와 어울려 다방에 들리는 게 버릇처럼 되었고 어느 극장에서 좋은 명화 한다면 뻬놓지 않고 찾아다니면서 한 달 봉급을 낭비하던 내가 그때의 월급 몇 분의 일도 안 되는 오천 원이지만 잘 두었다 보람있게 써야겠다하고 깊숙히 넣어둔 돈을 월부값으로 주고 나니 어쩐지 서운했다. 여자란 언제나 실속 없는 일만 하는 것 같다. 그러나 머지않아 두 번째 받을 월급날을 기다리면서 오늘도 하루해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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