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강론 때 신부를「똥걸레」라고 말한 일이 있다.
주님의 성전에서 거룩한 사제직을 모독하는 말 같지만 알고 보면 똥걸레야말로 가장 더러운 것을 깨끗하게 하여 주는 것이요. 또 가정에서 필요불가결의 것이다.
그렇게 볼 때 신부 편에서는 더러운 죄악을 사해줄 뿐 아니라 신자들의 어려운 일 궂은 일까지도 돌봐주어야 하는 존재다.
그런데 마치 걸레가 필요할 땐 찾아 쓰지만 쓰고 나면 내던져 버리는 사람처럼 신부들이 필요하고 아쉬울 땐 찾아오고 부려먹지만 늙고 병들면 아예 쳐다보지도 않는 신자들도 많은 것 같다.
늙고 병든 노사제나 은퇴하신 신부님들의 고독한 생활을 볼 때마다 느껴지는 감회다.
여기 자신을 똥걸레처럼 충실히 봉사하시다가 신자들로부터는 똥걸레 취급을 받지 않고 존경을 받으시다가 괴뢰군들에게 잡혀 순교하신 신부님이 계신다.
백 필립보(文必) 신부님(불란서인) 그 분은 30년간 합덕본당에서 전교하시다가 1950년 8월 14일 오후 3시경 고백성사를 주시던 중 괴뢰군들에게 67세의 늙으신 몸으로 납치되어 순교하신 성자다운 사제이시다.
나는 성당을 장식하다가 위장된 스리쿼터에 신부님께서 쓰시던 물건과 함께 경본 하나만 들고 피납되시는 것을 똑똑히 본 증인이다.
그분은 당신을 잡으러 온 괴한들이 「쌍뚜아리움」에 무례하게 들어오자『여기가 어딘데… 너희들은 방에도 신을 신고 들어가나』하시면서 호통을 치셨다.
신부님께서는 9월 14일경 애국 지사들과 같이 끌려가시다가 성당 앞에 이르자 트럭에서 일어나시어 성당을 바라보셨는데 이것이 몇 신자들이 마지막으로 뵈온 신부님의 모습이다.
당신이 지으시고 30년간 정들었던 성당을 죽음의 길에서 바라보시면 그 마음이 얼마나 아프셨으랴!
이제 피납되신 지도 24년. 지금은 어느 곳에 묻혀 계신지조차 알 수 없고 다시는 뵈올 수 없어도 신부님께서 뿌리신 생명의 씨앗은 날이 갈수록 열매 맺고 그분의 성덕은 교회 발전에 밑거름이 되고 그분의 넋은 그분을 존경하던 비신자들 가슴에도 살아 있다.
잡혀가시던 차를 세워 함께 순교하신 송 바오로 복사님, 같은 해 순교하신 윤복수 총회장님, 신부님의 손발이 되어 본당 발전에 기둥 노릇을 하시던 전재익 복사님과(작고·성공회 신부에서 개종) 이장용 복사님(지난달 작고) 같은 분들은 신부님의 높은 덕을 효법하시던 분들이다.
5리밖에 안 되는 곳에 신합덕 성당이 세워졌고 본당 내 마을 98%가 신자이며 16명의 사제와 줄잡아 70여명의 수도자들이 이 본당에서 배출된것도 김대건 신부님과 백 신부님의 감화가 큰 것 같다.
신부님의 성덕은 이루 말할 수 없지만 공적으로나 불의에 대하여 그렇게 엄하시면서도 부드러운 자애, 환절기때마다 심한 해수로 고생하시면서도 철저한 성무 집행과 주님 앞에서 돌아가시겠다고 일 년에도 몇 번씩 제대 앞에 누워 계시던 모습, 손수 만든 고약과 안약으로 매일 식사 중에도 5~6명씩이나 치료하시던 일, 맹물과 빵으로 잡수시고 다 바래고 해진 수단을 입으시던 청빈, 모두가 눈 앞에 선하고 신부로서 부끄러움이 앞선다.
6ㆍ25 동란 중 당신의 보좌 박노열(천안 주임) 신부님을 피난 보내시고 피신을 권하는 신자들에게『신자들을 버리고 어디로 가나 주께서 주신 치명의 기회를 왜 놓치나』 하시던 순교정신과 양들에게 대한 사랑,『동란 중에 많은 사람이 죽을 것이지만 동란 후에 교회는 급속히 발전할 것이요』 하시던 예언적 말씀이 생생하다. 생각하면 할수록 철저한 똥걸레로 헌신하며 포교하시던 높은 성덕과 용기 앞에 머리가 숙여질 따름이다.
이분 같은 사제들이 많고 사제를 똥걸레 취급할 신자들이 없어진다면 우리 교회는 얼마나 따뜻하고 발전될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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