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가에 밀려 온 물새의 울음이 총명한 날은 정말 생명이란 언어를 알고 싶어지듯이 정신이 쇠락한 이 날은 하느님이 사랑의 전신으로 저에게 영세의 은총을 알게 하셨다.
오늘은 내가 다시 태어나는 날.
엊저녁 신부님의 말씀대로 마음의 준비를 하는 나의 심정의 설레임은 아직 신앙의 고백이 알차지 못함인가?
언젠가 아버지가 나의 조그만 쪼막손을 꼭 잡고 학교의 문턱에 서던 날은 이때처럼 설레임이 아니다. 그때는 철이 없었지만 이제는 철이 들어서인지 마음의 여유가 생겨서 설레임도 조금은 점잖아졌다고나 할까?
저녁 7시까지 성당엘 도착할려면 5시30분에 집을 나서야 한다.
차창을 통해서 보는 낯익은 산과 들 그리고 기억된 집들이 오늘은 이상하게도 웃음을 띄우며 나를 휙휙 스쳐서 저만큼 물러앉는다. 그나마 보슬보슬 내리는 비마저도 나에게 축복이나 하는 것처럼 대지를 적셔서 삼라만상의 자태을 소생의 기쁨으로 환원시키고 있다. 새로운 생명을 얻는 나에게도 하느님의 은총이 내 가슴 속 깊이 차곡차곡 쌓아졌으면…
온갖 생각이 머리를 스쳐 가벼운 흥분을 가져와 질퍽한 거리를 성당까지 걸을 땐 이때까지 느끼지 못한 마음으로 한발한발/흙탕물만을 의식한 걸음이 아닌/걸었다.
얼마 후 신부님 집무실엔 새로운 하느님의 아들 후보생과 대부님들로 가득 찼다. 집합 완료. 신부님이 빨간 생화를 주시고 수녀님은 이름표를 달아 주신다. 순간 국민학교 입학식 아침 삼촌께서 나의 이름표를 달아주신 기억이 뇌리를 스친다.
영세식이 진행되는 동안 긴장이 겹쳐 등엔 식은땀이 흐른다. 내 자신 25년 동안 너무나 어두운 깊은 잠을 잤나 보다. 모든 의식이 끝나고 신부님이 집무실에서 우리들을 악수로 맞이할 땐 새로운 아홉 형제들의 얼굴엔 저마다의 생명이 웃는다-새로운 삶이 이렇게 값진 것이라고-
지난 1월 8일부터 시작한 교리. 그동안 불편하신 몸으로 추운 날씨를 무릅쓰고 정말 헌신적인 사랑으로 지도해 주신 김보니파시오 신부님 세 분 수녀님들 그리고 저에게 하느님을 알도록 인도해 주신 김베드로 선생님과 사모님 모든 분들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또 바쁜 사회생활 속에서도 밤 늦게까지 하느님의 말씀을 들고 새로운 생명을 받은 아홉 형제분들에게 재삼 축하드리며 이제 세상의 빛이신 그리스도의 말씀을 따라 영원한 천주의 이름을 새겨 본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