쪼들리는 살림에 남편은 병들고 다 큰 아들마저 주일미사도 빼먹고 진종일 못된 짓을 하고 돌아와 속을 썩인다.『아이구 이 못된 사주팔자야, 이놈아 너마저 어미를 괴롭히니…』신세 한탄과 넋두리를 해댄다.
절친한 친구가 윤락가에 빠져 있음이 마음이 아파서 그 구렁텅이에서 빠져 나오도록 권유한다.
대답 왈『얘 그 값싼 동정 집어쳐라 팔자소관인 걸 어떡하니』
많은 사람들이 사업을 실패하거나 재앙이 닥쳐오거나 일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그 원인을 애매한 사주팔자에 돌린다.
사주란 자기가 태어난 연, 월, 일, 시를 말하고 팔자란 사주를 가지고 점칠 때 쓰는 말이다.
즉 갑자ㆍ을축ㆍ병인하는 60간지(干支) 중에 자ㆍ축ㆍ인ㆍ묘하는 12지수를 1에서 12까지 배치하고 사주의 숫자를 합하여 그 수를 8로 나누어 남은 수로 점괘를 맞추는 점술에서 쓰는 숫자란다.
그러니까 성공과 패배, 행과 불행, 건강과 병고, 재앙과 평안 등 자기의 모든 운명 결정이 간지와 사주라는 숫자에 좌우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그런데 원래 10간은 날(日)을,12지는 달(月)을 가리키기 위해 온 나라에서 12지에다가 시각을 붙였고 전한 말에는 간(干)은 하늘이고 지(支)는 땅이라 하여 간지가 우주의 근원이 된다는 참위학이라는 것이 나오고 이 간지의 사주와 농간에 따라 인간의 운명이 결정된다는 미신적 운명론이 활개를 치기 시작했단다.
사람의 감정이란 워낙 얄퍅한 것이어서 불의의 사고나 재앙이 엄습해 오면 어디엔가 위로를 찾고 액운을 막아 주기를 바라는 것이 상정일 것이다.
그뿐인가. 어떤 사람은 이름 석 자가 잘못되어 어떤 사람은 조상의 묘를 잘못 써서 어떤 사람은 사마귀가 잘못 박혀서 운명이 기구하다고 생각한다.
성리학ㆍ골상학ㆍ성명철학ㆍ역리학 등 거창한 학문의 간판을 내걸고 손금ㆍ토정비결 심지어는 발바닥 배꼽의 위치 등에 자기 운명을 거는가 하면 무슨 도사ㆍ 대사 무슨 대가 등의 탈을 쓰고 목하 성업 중이다.
이런 것들이 전혀 효과가 없는 것은 아니라 마음의 위로를 준다든가 통계적으로 개연성은 있을 테니 말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런 갖가지 미신 행사나 장사 행위도 문제려니와 이런 곳을 찾아가는 사람들이다. 선거 때면 국회의원 입후보자들이 문전성시를 이룬다니.
실화 한 토막‥사업이 계속 실패하기 때문에 저명한 성명 철학자를 찾아갔다. 이름이 잘못되었기 때문이라면서 새 이름을 작명하여 주었다. 희망으로 가득 찬 그는 열심히 뛰었지만 역시 실패, 2년 후에 다시 그 대가님을 알현했더니『허허 당신의 이름이 못 쓰겠군요…』화가 나서 한 마디 내뱉고 홱 돌아섰던 사람이 있다.
진정 이들의 말이 맞는다면 왜 도사 대가 지관들이 늘 그 모양 그 꼴로 살고 길거리에 앉아 궁색을 떠는가. 왜 미신이 적은 나라일수록 문명이 발달됐고 미신이 많은 나라일수록 못 사는가 생각해볼 일이다.
더욱 한심스런 것은 교육 깨나 받았다는 신자마저 불길한 일이 있을 때 그런 곳을 ‘찾아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병고나 재앙을 면하고 소원성취하기 위해 성당에 가는 사람이 있으니 할 말이 없지만.
요컨대 우수한 재능과 뛰어난 두뇌를 가진 우리 민족이 못 사는 원인의 하나가 자기 힘과 노력으로 재난을 극복하려 하지 않고 나쁜 것은 잘못된 팔자소관이고 잘 되는 것은 자기 노력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소극적이고 체념적인 그릇된 사고방식 때문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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