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행히 이런저런 지원으로 부도를 막고 정상조업도 재개되긴 했으나 그렇잖아도 허약하고 문제가 많았던 터였으므로 회사형편은 더욱 나빠졌다.
또 땅에 떨어진 사기를 되살리기 위한 파격적인 임금인상, 시장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노후시절교체, 정상경영활동을 가로막는 자본취약성을 보강하는 증자 등등 결단을 필요로 하는 일이 박두해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시행은 모두가 막대한 자본이 소요되거나 당장 보다는 적어도 5년 후의 성과를 내다보며 내릴 결정이므로 모회사의 동의와 지원 없이는 실현이 불가능한 것이었다. 나이 새로운 고민은 이래서 다시 시작되었다. 모회사는 이미 오래전부터 외면하고 등한히 해오고 있었기 때문에 나의 재건구상에 냉담했다.
형편 좋은 모회사는 대우도 일등가고 매사 풍족했으며 활기에 넘쳐 있었는데 나는 사흘이 멀다하고 처자식 굶주림에 떼밀려 놀부형 집으로 걸식하러 가는 흥부꼴로 일시자금이라는 급전을 얻으러 모회사로 가곤 했다.
그러나 그 횟수가 잦아지고 자금규모가 커짐에 따라 모회사의 반응은 측은함에서 귀찮아하는 모양으로 바뀌더니 끝내 비판과 질책이 담긴 냉대로 변해 갔다. 이러한 분위기에다 대고 몇 년 후의 경영개선을 겨냥하는 방안을 내서 승인을 받아낸다는 것은 지난한 것이었다.
나는 중대한 결심을 해야 했다. 문자 그대로 사생결단을 벌려야 했던 것이다. 기업에 있어 전문경영자가 마지막 카드로 내놓는 것은 직장생명을 거는 사표뿐이므로 이것을 답보로 결판을 내려는 것이다. 이미 나이도 사십줄에 들어서고 있었고 입사경력 10년에 그룹 내에서 촉망받는 핵심중역에 오를 만큼 성공도 했으며 가정도 안정되어 있었으므로 사표까지 거는 구사(救社) 시도는 모험스러운 것이었다.
나는 여러 날을 두고 고민했다. 내키지 않고 피곤했지만 개인의 안전한 직장생활을 위하고 지금까지 애써 성취해 놓은 성공을 지키고자 어영부영한 두 임기나 지내보고 적당한 기회에 모회사나 형편 좋은 자매회사로 옮겨 가는 것이 현명하다는 유혹이 떠나지 않았다.
전임자 여럿이 최선을 다해서도 갱생시키지 못한 회사에다 사주인 회장 또한 어쩌다 낳긴 했어도 애써 기를 의욕이 없는 형국이니 굳이 살신의 십자가를 나 혼자서 질 필요가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의 내면 깊숙이 꺼질 듯 가녀리게 살아 불타던 신앙의 미열은 신기하게도 현실세계의 고난에 찬바람을 상관하지 않은 채로 꽤 건강한 정의로운 오기나 이상, 뜨거운 열정, 순수함 없는 자에 대한 연민, 성취보람 같은 것들을 키워왔으므로 나로 하여금 불안감을 이기고 개인적 안일에 대한 미련을 버리는데 큰 힘이 되었다.
사표를 건 모회사와의 한판에서 나의 제안이 관철되고 곧이어 필사적인 구사행진에 뛰어들었다. 종업원들이 놀라 믿기 위하지 않을 정도로 임금을 올리고 작업환경을 개선하자 사기가 오르고 눈에 띄게 작업능률이 높아졌다. 뿐만 아니라 회복세를 보이기 시작한 시장경기가 79년에 들어서 부터는 상당히 호전되었으므로 회사 형편은 나날이 좋아졌다.
드디어 79년 상반기 결산에서 창업이후 10여년 만에 최초로 흑자를 냈다. 모회사는 대견해해고 동업계에선 신기해했으며, 종업원들은 환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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