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초 여름을 맞는 나는 공포 속의 한중간에 서있는 것 같아 불안하다. 한적한 시간에 산책을 하고자 조용한 곳을 찾으면 낯선 이들로부터 시비를 당하지 않을까하여 두렵고, 출퇴근하는 거리나 차내에서는 질주하는 매카니즘에 내 생명을 빼앗기는 불행함을 당하지나 않나하여 긴장이 된다.
경제와 기계문명의 발달은 인간성의 손실을 가져온다는 논리에서, 나만이 강박 관념적 노이로제에 시달리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웅지(雄志)의 뜻과 사회집단을 이끌고 가야할 지식의 산실에서 날아오는 화염병 소리와 익명의 유독가스에 눈이 붓고 숨이 막혀 쓰러지지나 않을까 겁이 난다. 정이 가득했던 교실에서는 사무적인 지식의 전달과 타산적인 감시의 눈초리들이 가슴을 무겁게 한지오래이다. 존경과 사랑이라는 언어가 사라진지 오래되어 천직으로 여겨왔던 학교로 출근하는 발걸음이 무거워진다.
근로자들의 삶의 근원장인 기업에서의 관리자와 작업자의심각한 다툼은 언제나 끝날지 모르는 불안감을 더해주고 있다. 이러한 일들이 선진사회 실현으로 잘 살 수 있으며, 민주화의 꽃을 피워 공존의 번영을 가져온다고 장담하던 이들도 믿지 못하게 만들었다. 낯선 이나 정치한다는 높은 이들을 막론하고 믿지 않으려는 세상이 오늘의 현실이다.
멋진 차에서 내리는 낯선 이방인의 입에서 나오는 돈과 투기라는 소리에 농사짓는 이들은 허탈감에, 빠지고 아파트 한 평에 천만 원이라는 TV뉴스에 공연히 짜증이 나는 세상이다.
몇 날 몇 달을 서로 싸워야하고 급기야는 새 삶의 터를 찾기 위하여 짐을 싸야하는 희생이 얼마나 더 있어야 다 같이 잘사는 때가올지 암담하다. 내 이웃에 있는 어려운 이와 수많은 불우한 이들을 구제 못하고 해결 못하는 현실에서 통일을 이루어 먼 곳에 있는 이들과 같이 잘 살겠다는 논리들도, 나에게 있어서는 또 하나의 공포인지 모르겠다.
배운 이나 못 배운 이나, 가진 자나 못 가진 자나 서로가 서로를 외면하는 오늘의 현실에서 나에게는 또 하나의 두려움이 있다. 민주화 이론에 휩싸여 흑백논리의 어느 한쪽에 서야만 사람 구실하는 두려움이 그것이다. 빨갱이 신부라며 뺨을 맞고 성전이 불태워짐을 당하는 세상, 제자가 스승을 구타하고 돈으로 권력을사는 세상, 믿는 이들끼리 불목하고 하느님의 이름과 하느님의 집을 팔고 사는 세상, 성전을 지켜야 될 분들이 영웅적인 인물이 되고 싶어 날뛰는 세상, 분명 나는 공포의 한 중간에 서있다는 느낌이다.
주여! 하느님이 계시는 집은 두려움과 공포가 없는 집이어야 하고 평화스러운 안식이 있는 것이 틀림이 없다고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지금 우리의 주변에는 두려움에 떨고 있는 많은 이들이 있습니다. 주여! 주 하느님의 집에서는 돈이나 권력을 논하며 흑백의 논리나 통일을 이야기하고, 세상의 일들로 다루는 집이 되지 않도록 하소서. 두려움과 공포의 한 중간에 서 있는 많은 이들이 조용하고 사랑의 믿음을 얻고, 실천할 수 있는 교회가 되도록 하소서. 또한 모든 성직자들이 그러한 믿음을 가르치는 참 제자가 되도록 도와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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