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2년도 세계 종교계의 움직임속에 괄목할것 은 영성의 급증과 복음화의 활발이라고 한다. 미국종교소식 통신사인 RNS(RELIGIOUS NEWSSERVICE)는 종교계의 10대뉴스중 첫째가는 것이 개인의 영신적 체험추구의 급증이라고 선정했다. 이것은 과연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제2차「바티깐」공의회 이후 갈팡질팡하던 교회가 이제 올바른 길을 찾았다는 뜻일까?그렇지않으면 폭동과 테러ㆍ인종차별과 전쟁ㆍ경제와 사회불안의 소용돌이 속에서 인간이 어떤 안식처를 찾으려는 경향에서 오는것일까?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감당할수 없는 여러가지 문제들 때문에 초자연의 세계에 의지하려는 심정의 결과일까? 어쨌든 여러가지 의문을 가져오는 현상이다.그러면서도 종교계에서는 이 현상을 흐뭇하게 생각하게 되는것만은 부정할수 없다.
이러한 세계적인 움직임은 틀림없이 우리나라에도 불원간 상륙하게 될것이다. 따라서 영성의 급증은 마치 유행처럼 왔다가 사라지는 그러한 현상에 지나지 않을 위험도 많다. 그렇게 된다면 종교의 존재가치는 허무한 것이 되고 말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이 영성의 급증을 올바로 이해하고 올바른 영성생활에 대한 인식을 가지는 것이 대단히 중요한 것이다.
영성생활이란 비록 규명하기는 어려우나 하느님과의 일치의 생활이다. 모든 크리스찬은 이 영성생활 즉 정신의 세계안에서의 생활을 영위하는 사람이다. 영성생활을 영위하지 못하고 순수 육적인생활 육의 탐욕에 지배된 생활을 하는 사람은그리스도人이라고 생각될수 없는것이다. 비록 정도의 차이는있다 하더라도 모든 크리스찬은 영성생활을 영위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하느님과 일치하는 이 영성생활은 감정에 치우친 생활은 아니다. 감정적으로 하느님의 현존을 느꼈다고 해서 영성생활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세계적으로 선풍을 일으키는 이 영성의 급증은 카리스마적 운동과 성령강림운동(PENTECOSTALMO VEMENT)으로 나타나며 여기에는 감정적인 요소가 다분히 많이 들어있다. 진정한 영성생활은 이 감정적인 면을 초월해서 괴로울때나 슬플때에도 끊임없이 하느님과 일치할수 있는 생활인 것이다. 우리 가톨릭 신자들에게 긴급하게 요구되는 것이 바로 이 진정한 영성생활이라고 우리는 생각한다.
현재 교회에서는 신자 재교육을 많이 부르짖고 있다. 그래서 많은 연수회 세미나 등이 개최되고 있다. 그런데 여기에서 한가지 느끼는 것은 신자 재교육이란 신자들에게 많이 가르치는 것으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대림때나 사순절때에 강사를 초빙해서 본당 신자들을 모아놓고 특별한 강연을 한다. 그러나 과거에 실천해오던 성체강복이나 십자가의 길이나 성시나 첫첨례 오ㆍ육ㆍ칠 그리고 공동묵주의 기도 만과 등은 거의 그 자취를 본당에서 감추고 말았다. 이제 이러한 신심행사는 구식으로 생각하고 중요한 것은 미사성제뿐인 것처럼 되고 말았으며 이것 외에 신자들에게 권고하는것은 성서를 읽는것 정도이다. 신자들도 이제는 갖가지 신심행사는 아예 안하는 것으로 알고있을 정도로써 본당에서 다시 시작한다 해도 별로 많은 사람들이 참석하지도 않는다. 누가말하기를 신자들의 재교육은 본당신부의 열심에 달려있다고 했다. 이러한 신심행사의 부활은 본당신부의 주도권에 달려있을 것이고 또 신자들의 재교육은 반드시 신심행사와 직결되어 있는 것이다.
영성생활에 가장 중요한 인간적인 요소는 기도이다. 기도는 지식으로 안다고 할수있는 것이 아니고 기도함으로써 하는것이다. 위에 말한 신심행사는 바로 기도들이다. 따라서 이 신심행사들은 영성생활을 하는 가장 좋은 방법들이다. 그런데 우리가 다른 무엇을 할것인가? 이제는 이 신심행사들을 부활시켜야 할것이다. 그래서 신자 재교육도 이 신심행사를 통해서 하도록 해야한다. 초대교회 신자들도 서로 모여서 하느님을 찬송하는 노래도 부르고 성서도 읽고 기도도 하고 설교자들의 말을 들었다. 이것이 그들의 영성을 발전유지하는 바탕이 되었던 것이다.
더구나 우리 한국교회에서는 많은 신자들이 교회의 신심행사를 갈망하고 있다. 거기에서 그들은 종교적인 분위기를 맛볼수 있고 하느님의 현존을 체험할수도 있다. 음악회나 성극이나 파티로 요란하게 지내는 성탄절에 엄숙하게 조용히 기도를 올릴수 있는 기회를 신자들은 바라고 있는 것이다. 진정 교회는 여기에 대해서 자아반성을 해야한다. 너무 지상위주의 교회가 되어가고 있는 것이 아닌지? 태만하고 안일무사주의의 교회는 아닌지? 成功만을 추구하는 교회는 아닌지? 하느님을 잃어버린 교회 즉 영성을 상실한 교회는 맛을 잃은 소금과 다를바가 전혀 없는 것이다. 우리 한국교회는 어쨌든 좀 더 열심한 교회가 되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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