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사는 현대 그리스도인의 사명을 새삼 명제로 삼는 그 이유는 무엇인가? 얼마 전에 정계 일부에서「교회는 정치 문제에는 관여하지 말라」는 취지의 발언이 있어서 그것이 교계의 논란의 대상이 된 일이 있었고 또 최근에는 지학순 주교의 재판사건이 발생하여 우리 교회 안에 비상한 관심과 여론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때에 있어서 개별적인 그리스도인으로서 또는 그리스도人의 대표인 교회로서 다시 한 번 그 궁극적 사명을 각성해야 할 것임을 통감한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선포하고 인류을 구원의 길로 이끌어 지상에 하느님의 왕국을 건설하는 것을 그 근본 사명으로 함은 두말할 여지도 없다.
여기서 교회 즉 그리스도人은 복음 선포의 주체가 되고 인류 사회는 그 객체 즉 대상이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교회는 눈에 보이는 현실세계 안에서 그 사회를 눈에 보이지 않는 그리스도 왕국으로 변혁시키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또 그러기 위해서 그리스도人은 하느님 나라 즉 신국의 시민권을 가지는 것과 동시에 이 세상 나라 즉 인국의 시민권도 이중적으로 갖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예수 그리스도께서 신격과 인격을 공유하신 것과 비슷한 모습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러한 그리스도인의 양차원적 위치에서 입각해서 볼 때 신국 시민으로서의 사명은 곧 성서와 전통의 정신에 투철하며 현대적 이해로 잘 표현된 제2차「바티깐」공의회의「교회헌장」에서 찾아야 하겠다.
헌장은 교회를「그리스도의 몸」과「하느님이 백성」으로 표명하면서 교회의 일치성을 더없이 강조하여 교회는 일치의 성사와 비슷한 것이라고 설파하고 있다. 그리하여 그 일치는 주교단과 성직자 수도자 및 평신도와의 상호 사랑으로써 이루어져야 함을 거듭거듭 가르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복음 선포의 궁극적 사명을 다하기 위하여 먼저 교회 안에서 제일차적인 일치의 사명을 수행해야 할 것이다. 그리스도는 그리스도인들이 서로 사랑하여 하나가 되기를 유언으로서 간절히 기도하셨다.(요한 17ㆍ20) 그런데 오늘날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과연 하나로 일치되어 있는가. 주교단 안에서 성직자나 수도자 안에서 평신도 안에서 또 그들 상호간에서 일치되어 있는가. 이에 대해서는 등시적으로만 대답할 수 없는 것을 유감으로 생각한다. 많은 실례를 들 필요도 없이 현재 당면하고 있는 지 주교의 문제만 보더라도 넉넉하다. 물론 만사에 있어서 의견의 일치가 절대적으로 요청될 수는 없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한 몸의 같은 지체 그것도 주교 공동체의 큰 지체인 주교가 무한한 고통 가운데 처해 있는 때에 비록 그 원인 사유에 대한 판단에 있어서의 의견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그리스도 공동체인 한 몸의 지체로서 고통을 동고동참하는 사랑의 감싸줌이 없이 냉시 내지는 무관심의 태도를 지닌 다른 지체가 있다면 이는 실로 그리스도께서 바라시는 하나가 되라는 사명을 망각한 것이다. 다같이 맹성해야 되겠다.
다음은 인국 또는 지상 나라의 시민으로서의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빛 세상의 소금 세상의 누룩이 되어서 그리스도를 증거하라는 사명을 받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사명에 대해서는 제2차「바티깐」공의회의「현대 세계 사목헌장」에서 이론적ㆍ현실적으로 풍부하게 해명하고 있다. 즉 세계 안에서의 교회상을 명백히 부각시키고 있는 것이다. 교회는 오랫동안 이른바 정교 분리의 원칙에 따라 세속 사회 특히 정치 문제에 대해서는 관여하지 않는 초월적 자세를 취해왔었다. 그러나 이것이 지나치게 되므로 인해서는 보수적 폐쇄적으로 흘러 끝내는 현대 사회와는 단절 내지 소외의 상황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이것은 교회 사명을 수행할 대상을 외면하거나 상실한 것과 마찬가지이다. 이에 교회는 금세기 후반부터는 여러 가지의 회칙 즉,「지상의 평화」「어머니와 교사」「제민족의 발전」등을 반포하였고 또「현대 세계 사목헌장」안에서 교회의 사회 현실 참여에 대해 간곡하고 명확하게 그리스도人의 중대 사명을 일깨워 주었다.
말하자면 이때까지의 현실 초월의 명목하에서 있었던 사회 소외의 소극적 자세에서 현대 세계 구원의 차원에서 현실 참여의 적극적 자세에로의 이향을 선언하고 있다. 이러한 현대적 사목의 새로운 교회상에 대해서 아직도 그 근본 정신을 이해하지 못하고 도리어 교회의 현실 참여를 회의적 내지 비판적으로 임하는 인사들이 산견됨은 실로 한심한 일이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예언자직을 수행하기 위하여 인간의 존엄성 기본권인 자유 정의와 평화와 사랑에 대한 하느님의 진리를 세계 현실 안에 예언자적으로 선포하는 광야의 외치는 소리가 되어야 한다. 또 사회의 부정과 불의 부조리와 부당한 인류의 억압 타락된 윤리 상황의 불균형 등의 문제에 대하여 예수께서 바리세인들에 대한 엄혹한 질타와 같은 경종을 울리는 것이 바로 교회의 큰 사명임을 깨달아야 하겠다. 최근 보도되고 있는 브라질 주교단의「교회와 정치」라는 사목교서(본보 927호)가『기본권 수호는 교회의 의무』임을 주장한 것이다. 마닐라의「하이매 L. 신」대주교가 불의에 고통 받는 사람들을 위해 발표한 공개상에서『정의와 공정의 추구를 위해 일하는 것도 가톨릭의 의무지만 이러한 목적이 방치ㆍ망각되고 있을 때 이에 대한 우리들의 항의를 알리는 것도 가톨릭의 의무이다』라고 밝힌 것은 상술한 교회 사명의 정신을 드러내는 하나의 타산지석이라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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