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말 전남ㆍ제주의 일부 지방에 태풍으로 인한 집중폭우로 말미암아 극심한 재해를 입고 있는 사실은 이미 지상에 자세히 보도되고 있는 바와 같다. 그 내용을 보건대 영산강 탐진강 유역의 일대가 우심하여 인명 피해만도 70여명에 달하고 농작물 가옥 재산 등의 피해는 실로 80여억 원에 이르며 이재민의 수효는 무려 5만여 명이라고 한다. 한 해 농사 지어 추수를 한 달 앞둔 논밭의 넘실거리던 곡식들이 하루 사이에 유실, 고사되는 광경을 목도하는 농민들의 가슴 아픈 심경은 상상하기조차 슬픈 일이다. 거기다 가옥 가재 침구 등까지도 잃어버린 이재민의 수도 엄청나게 많아서 이들의 수용과 구호가 긴급을 요한다는 실정이다. 이에 대해 정부 당국이나 중앙재해대책본부에서 재빨리 구호의 손길을 뻗쳐 만단의 대책을 실시하고 있고 또 적십자사를 위시한 각 교회와 기타 자선단체들의 구호활동이 전개되고 신문ㆍ방송 등의 매스콤이 총동원되어구호금품의 수집을 서두르고 있다. 이에 우리는 먼저 불의의 재해로 생명을 잃은 많은 영혼의 명복을 빌며 이재동포들의 물심적 고통에 대해 심심한 위로의 뜻을 표하는 바이다.
그리고 이들의 구호에 전력을 기울이는 관계 당국의 노고와 이에 적극적으로 협력하는 각계각층의 정성에 경의를 표해마지 않는다. 그리고 이때에 우리는 한 가지 반성해볼 것을 잊지 말아야겠다. 즉 한국은 오늘날까지 한재와 수재의 천연재해가 마치 연중행사처럼 닥쳐오곤 한다. 그것이천재이니까 인력으로는 어찌할 수 없기도 하겠지만 어느 정도까지는 인력으로 방지 내지 극복하는 데 있어서 국가시책에 소홀한 점이 없었던가하는 문제이다. 예로부터 치산치수는 치국의 근본이라고도 일컬어왔다. 오늘의 현재 우리나라에서도 각종의 대규모토목공사 등이 적지 않게 시행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집중적인 치산과 치수를 위한 시책에는 다른 사업에 비교해서 우선 순위나 엄중도에 있어서 미흡한 점이 없지 않는 것 같다. 이번에 극심한 피해를 당한 영산강 유역만 하더라도 이 점은 수년래의 재해 지역으로서 좀 더 일찌기 치수대책이 되었어야 하고 그것이 있었더라면 이번과 같은 피해는 최소한도에 그쳤을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 되겠으나 차제에 영산강 류역의 개발 계획이 무엇보다도 우선적으로 촉진되기를 노파심으로 바라는 바이다.
그런데 지금 당장 요구되는 것은 이재자의 구호 문제이다. 여기서 우리 교회는 어떻게 구호의 대열에 앞장서거나 협력할 것인가. 이에 전 교구장은 각 본당이나 산하 각 단체에 대해서 구호에 적극 협력할 것을 호소하고 있다. 교회 안의 여러 가지 조직을 통해서 모든 신자들이 빠짐없이 구호의 손길을 모으도록 부탁하는 마음 간절하다. 교회가 이웃 사랑을 가르쳐온 것은 이미 귀가 아프고 식상할 정도이다. 그러나 그것이 만성화되어서 이웃 사랑이 정말로 절실히 요구될 때에 방심하거나 망각하고 지나가는 수도 없지 않다. 이웃 사랑의 이웃이란 루까복음(10,20)의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이야기에서 우리는 쉽게 깨달을 수 있다.
우리가 사랑해야 할 대상인 이웃은 곧 곤경에 빠져서 우리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인 것이다. 그렇다면 전남 지방의 수재 동포들이 바로 현시적으로 우리가 사랑으로 도와주고 구해 주어야 할 이웃이요 형제이다. 눈 앞에 매일 같이 신문을 통하여 보이고 방송을 통해 귀에 들리는 이재민 형제들을 사랑하지 않고서 어찌 눈에 보이지도 않는 하느님을 사랑한다는 그리스도 교인임을 자처할 수 있겠는가. 이런 점에 있어서 우리 교회가 다른 자선 단체나 또는 다른 그리스도교파에 비해서 세인들로부터 열성이 부족하다거나 행동이 지완하다는 등의 평론을 듣고 있는 것을 우리는 솔직히 받아들여야 할 줄로 안다. 이것은 가톨릭교회가 범사에 있어서 능동적이 못 되고 피동적으로 움직이는 생태를 가졌음과 또 교회가 조직적 제도하에서 일원적으로 행동하는 기질이 몸에 배었기 때문에 만사에 기동성이 결여되고 활기가 부족함을 면치 못하는 소이라고 반성해야 할 것이다.
이런 때마다 우리 신자들은 위로부터의 지령이나 권고를 기다릴 것 없이 즉각적이고 민감한 반응을 나타낼 수 있는 자율적이고 적극적인 행동 반경의 확대화를 도모해야 하겠다. 몇 해 전에 한 가지를 예를 들어보겠다. 충남 부여의 어느 본당 관할에서 폭우로 한 부락이 혹심한 피해를 입었을 때에 그 부락민은 대부분이 천주교 신자인데도 맨먼저 또 더 많이 신교 신자들로부터 구호를 받았고 우리 신자들의 그것은 훨씬 뒤의 일이었다는 사건을 회상함으로써도 짐작할 수 있다.
끝으로 이러한 교회의 사랑의 손길이 항상 더디고 미지근한 점을 보완하는 방안의 하나로서 생각할 만한 것은 교회기구 안에서 중앙재해대책본부나 적십자사처럼 평상시에 재해 구호를 위한 비축제도를 마련하여 임기응급의 구호에 대비하는 것이 어떨까 하는 바이다. 다시 한 번 호남 지방의 수재민 구호에 더 한층 적극적으로 앞장서기를 촉구하는 바이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