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에 의한 성모 마리아의 잉태를 무염시태라고 성경에서는 말한다. 말하자면 더럽혀지지 않은 몸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잉태하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마리아는 영원한 聖 처녀요. 순결의 표상으로서 숭앙된다. 영혼이나 몸이 순결하다는 것은 아름답고 축복 받을 일이며 신성한 일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성모 마리아의 경우에 있어서는 이 순결성 위에 보다 더 빛나는 모성애의 빛이 있다. 이 점이 한층 거룩하며 또 우리들 죄 많은 인간들 가까이에 그분의 인성을 느낄 수 있는 점이 아닐까 한다. 고통 없이 회임하여 편안히 해산하고 또 순조롭게 아기를 길러 위대한 신의 아들로 성장시켰다면 우리는 그분을 우러러보고 선망하기는 할지언정 결코 우리의 친구로 삼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마리아가 걸은 길은 선택된 순탄한 길이 아니라 어렵고도 고단한 길이었다. 세상의 보통 여자들이 가는 길보다 좀 더 험난한 길이었다. 우선 처녀 회임으로 인하여 속세의 도덕률에 시달렸어야 했을 고통, 길거리 마굿간에서 몸을 풀었을 때 심신이 함께 겪어야만 했던 고통, 또 그 아기를 길러가면서 요셉의 눈치를 살펴 늘 조마조마 마음을 조렸을 고통… 고통의 연속이며 오직 순명과 인내로 이것들을 극복하지 않으면 안 되었을 것이다.
마리아가 겪은 가지가지 수난 가운데에도 제일 견디기 어려웠던 것은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예수의 죽음-십자가 위에 그 아드님이 못 박혀 돌아가실 때였을 것이다. 미켈란젤로는 거작 <삐에따>에서 당시의 마리아의 끝없는 슬픔과 고뇌를 처절하도록 묘사 부각시켰다.
여자의 모성애는 본능적이며 감정적인 요소 위에 의지와 이성이 깃들여 있다. 그래서 여인은 자식을 위하여 어떠한 희생도 감수하며 목숨까지도 바칠 수 있다. 모성의 위대함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눈 앞에 사랑하는 아드님의 죽음을 본 어머니의 비탄, 슬픔 중에서도 으뜸가는 슬픔을 겪은 성모 마리아는 그 슬픔으로 인하여 고해에서 허덕이는 우리의 전구자가 되는 것이다. 또 그 슬픔으로 맺어져 우리의 동료가 되는 것이다.
슬픔의 연대의식-그것에 의하여 구원의 문이 열린다면 우리는 좀 찬찬히 우리 주변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혹 우리 주위에 굶주리는 이는 없는가. 핍박 받고 있는 이는 없는가. 괴로움을 당하는 이는 없는가 애통하는 이는 없는가…혹 정의가 불의에 짓밟히고 양심이 악의에 굴복하는 일은 없는가…그래서 이들 굶주림, 핍박, 괴로움, 애통과 모든 고통을 내 것으로 받아들여 함께 아파하여 힘을 모을 때 이 연대감 속에 아름다운 인간애는 싹 틀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인간애야말로 또한 저 가이없는 천주의 뜻과 일치하는 것이 될 것이다.
▲지금까지 김동억 신부님께서 수고해 주셨습니다. 이번 호부터는 여류 시인 허영자 교수님께서 집필해 주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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