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볕이 내리쪼이는「골고타」언덕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두 사람의 도둑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다. <모든 것이 다 이루어졌습니다>이 말씀을 마지막으로 예수는 숨을 모으셨다.
그의 희생은 만민을 사랑하는 증거였고 그가 짊어진 십자가에 의하여 인류는 죄를 보속 받게 되었다. 그러므로 예수의 십자가는「구원」이라는 크나큰 의미를 지니는 빛이요 다른 한편 피와 땀으로 얼룩진「전 인류의 죄」라는 무거운 무게를 지닌다.
그런데 우리가 신약전서를 잘 읽어보면 이 무거운 예수의 십자가가 거의 쌍벽을 이루는 또 하나의 십자가를 발견하고 놀라게 된다. 그것은 누구의 십자가였을까? 살로메라는 고혹적인 여인의 유혹을 받은 선지자 요한의 십자가였을까? 예수를 재판하기를 몹시 꺼려하였던 총독 빌라도의 십자가였을까? 아니면 대제사장 가야바스? 혹은 그의 장인 안나스인가?
그것은 다름아닌 가롯 유다. 은 삼십 데나이온을 받고 스승을 판 유다의 십자가였다. 예수는 열두 명의 제자를 고루 사랑하였지만 그 중에도 가롯 유다는 신임을 받았던 제자로 보아진다.
왜냐하면 예수는 그에게 돈궤를 맡겼다고 하였으니 요새로 하자면 경리 책임자였던 것이다.
그는 왜 스승을 많지도 않는 돈을 받고 팔았을까? 그가 참으로 악인이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스승의 신망을 시기하여서였을까? 그런 이유 때문에 그가 예수를 팔았다면 유다의 십자가는 그리 무거울 것이 못 된다. 유다가 예수를 판 것은 근본적인 가치관의 차이에서 빚어진 일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예수가 어느 때 라자로라는 이의 집에 들리셨을 때 라자로의 여동생 마리아가 귀한 향유인 나아드 향유를 예수의 발에 붓고 머리털로 씻어드리는 것을 보고 유다는 외쳤다. <아까와라 저 비싸고 값진 향유를 마구 쏟아 붓다니…저것을 팔면 삼백 데나리온은 될 것을…저걸 팔아 가난한 사람들한테 고루 나누어 준다면 얼마나 좋으리>라고.
이 얼마나 유다다운 사고방식인가?
이 말에서도 이미 짐작할 수 있지만 가롯 유다가 예수를 판 것은 그의 현세주의 현물주의의 탓이었던 것이다. 예수는 기적을 행하는 힘이 있으니 결코 죽을리 없고 가야바스는 재판에 붙이지 않겠다고 약속하였고 또 그 자신은 은을 삼십이나 받으니 좋고…일석이조로구나 하고 이 산술 전문가는 계산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 즉물주의의 계산이 와르르 무너졌을 때 그 앞에 입을 벌리고 있는 것은 허무와 고독이었으며 이것을 견딜 수 없었던 그는 은을 내어던지고 자살하고 말았다. 그래서 그의 십자가는 예수의 빛의 십자가에 대하여 어둠의 십자가로 영원히 맞서고 있다.
요즈음은 인간 사회는 지나친 물질주의 물량주의의 시장이다. 한 닢의 황금이나 한 푼의 이득을 위하여 양심과 영혼을 서슴없이 매매한다. 너나 나를 가릴 것 없이 모두가 가롯 유다의 척도로 삶의 의미를 재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조용한 밤마다 깊은 회오에 몸부림치지 않을 수 없다. 밑빠진 독처럼 채워도 채워도 끝이 없는 물질적 욕구에 허망감을 또 그것을 위하여 너무 많은 값을 치워버린 쓰라린 배반자의 고독감을, 무거운 십자가의 무게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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