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7일 제4차 주교 시노드가 개막됐다. 3년간의 준비작업을 마치고 전세계에서 모인 2백여의 대표들이「현대 세계의 복음화」라는 문제를 토의하고 있다.
주님으로부터 모든 민족에게 또 땅 끝까지 복음을 선포하라는 명을 받은 교회는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열과 성의를 다해 이 임무를 수행해 왔다. 신약성서의 역사는 복음선포의 역사다. 그 후대의 신학도 이 정신에 의해 형성되었다. 그러나 그 선포적 노력에 관련해서는 신학적 책임을 다한일도 신학적 창조성을 발휘한 일도 거의 없다. 복음 선포의 신학적 기초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역사과정에서 불적당하거나 수정되어야 할 복음 선포의 리해들이 생겼다.
16ㆍ17세기에는 복음 선포란 엄밀히 한정된 세계의 특정 지역에 하느님의 말씀의 증인으로 원정 가는 것으로 생각했다. 즉 신앙의 세계인 서구의 경계선을 넘어서 불신앙의 지역으로 가는 것인 줄 알았다. 그 시대에 XX외방전교회라는 것들이 많이 생겼다. 또 복음 선포란 회심ㆍ죄악에서의 회개ㆍ개인의 구원이라는 용어로 알아들은 때도 있었다.
이것은 인간을 하나의 전체성ㆍ사회적 실존으로 파악하지 않고 그가 생활하는 환경에서 적출된 고립된 존재로 만들어 놓았다. 이렇게 해서 교회의 중심적 관심은 인간의 영혼에만 쏠리게 되었다.
거금 수10년의 교회가 가진 복음적 선포 사상의 특수은 교회확장 개종자 획득 운동이었다. 이것은 교회의 가구성은 그 본래의 성격이라는 데서온 것이다. 그래서 복음 선포에 관한 저서들에는『교회를 부식한다』는 말이 많이 나오고 제2차「바티깐」공의회의 선교 활동에 관한 교령에서도 이것을 볼 수 있다. 때로는 복음 선포를 반세속화의 운동으로 생각하기도 했다(반세속주의가 아님).
또 복음 선포의 임무는 교회의 2차적 임무고 일부의 특정인들만이 원행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신자들이 많이 있다. 제2차「바티깐」공의회는 교회의 선교활동의 몇 가지 교의적 원칙을 제시했고 현대에 적응한 표현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메시지를 전파하기 위한 좋은 씨를 뿌렸다(Ad Gentea). 이번 주교 시노드는 뿌려진 씨가 백배로 결실하게 하는 임무를 맡았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 한 가지 주목할 것은 교회가 복음을 선포할 대상이 다원화된 인류가 살고 있는 현대 세계이기 때문에 종전에 사용하던「선교」라는 용어 대신「복음화」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는 점이다. 이것은 동시에 시노드가 다루는「복음화」라는 의제가 얼마나 광범위하고 복잡한지를 암시하기도 한다. 시노드는 복음화의 명확한 정의와 목표는 말할 것도 없고 그 동기ㆍ순서ㆍ방법 등을 제시해야 한다.
우리 신자들은 복음 선포의 책임은 절감하면서도 그 리론이나 실천 방법에 있어 많은 의문점들을 가지고 있다. 몇 가지 예를 든다면 ①모든 민족에게 또 땅 끝까지 복음이 전해진 오늘날 저「모든 민족」이라는 성서적 뜻은 무엇이며「땅 끝까지」의 신학적 의의는 무엇인지 ②「이 이름밖에」구원이 없다는 교회의 주장의 뜻과 실천적 의의는 무엇인지 ③역사와 구세사와의 관계 및 복음과 인간의 문화와의 관계는 무엇인지 ④우리가 복음을 제창할 때 이것을 국민의 문화생활에 동적으로 관계시키면서도 그리스도교 신앙의 본질을 잃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⑤예수 그리스도 안에 나타나 하느님의 계시의 독자성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지 ⑥우리는 어떤 원리하하에서 사회 참여를 해야 하는지 ⑦복음과 타종교와의 관계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지 등이다.
제2차「바티깐」공의회를 전후 해서 교회의 사목자 신학자들이 복음화의 신학을 형성하려는 갖가지 시도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복음 선포에 혼란을 빚고 있는 주된 원인은 그러한 시도가 선포에 있어 본질적인 그리스도교의 교리의 여러 측면을 강조한 데 있는 것 같다.
이 강조된 측면들 중의 하나가 복음 선포의 신학의 초점이나 방향이 될 때 그것은 선포의 범위를 좁히거나 미로에 빠뜨릴 염려가 있다.
우리는 이번 주교 시노드가 이런 혼란을 제거하고 확고한 지표를 제시해 줄 것으로 믿고 기대한다.
한편 한 달 간의 시노드가 걸을 길은 평탄하지 않을 것이 예상된다.
3년이라는 세월을 두고 연구ㆍ토의의 준비 작업을 해 왔지만 문제가 위낙 광범위하고 복잡해서 한 달 동안에 충분히 검토 종합할 수 있을는지 의문이다. 또 시노드의 구성원의 다양성으로 해서 의견 일치가 곤란할 수도 있고 세부에만 집착하다가 큰 것을 놓칠 수도 있다. 기타의 어려움들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과거의 예로 봐서 성청의 일부 관료주의적 책동도 없으리라고는 단정하기 힘들다. 이런 여러 가지 난관을 극복하는 것은 확실히 인간의 힘을 넘는 것이다. 만일 하느님께서 친히 시노드에서 역사하시지 않는다면 우리는 희망 없는 기도 앞에 서 있는 셈이다. 그러나 우리는 역사를 확신한다. 교회도 그의 복음 선포도 하느님 자신이 주신 것이다.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은 당신 종들의 나약성에 구애됨이 없이 인류 구원 사업을 당신의 뜻대로 이룩하신다는 것을 우리는 확신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시노드의 약속에 찬 성과를 기다리면서 열렬한 기도와 성원을 보내는 바이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