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께서 제자를 가르치신 말씀 가운데 <맹세하지 말라>는 항목이 있다.
거짓 맹세뿐 아니라 참 맹세도 하지 말라는 가르침이다. 맹세의 헛됨, 바꾸어 말하여 인간의 유약함을 갈파한 그리스도의 지혜의 말씀이다. 그러기에 그는 또 사람의 잘못에 대하여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고 하신 것이다.
만약에 잘못을 용서하지 말고 징계하라고 하여 엄한 율법으로만 다스렸다면 앞서의 맹세하지 말라는 이야기는 오만한 독선이 될 것이다. 몇 번이라도 거듭 용서하라는 사랑의 윤리 때문에 맹세하지 말라는 말씀은 불완전하고 약점 투성이인 인간에 대한 연민일 수 있는 것이다.
베드로는 그리스도 사후 그 가르침을 펴고 실천한 우두머리 제자였지만 그의 전신은 고기잡이였고 대단히 순박 충직한 사람이었던 것을 알 수 있다. 유월절날 밤, 겟세마네 동산에서 군사 무리들에 잡혀가기 조금 전에 예수는 너희가 모두 나를 버리리라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이 자리에서 베드로는 모두가 주를 버릴지라도 저는 언제든지 버리지 않겠습니다 라고 맹세하였다.
이때 예수는 닭이 울기 전에 세 번 그가 예수를 배반할 것임을 예언했다. 과연 베드로는 그날 밤 날이 새기 전까지 세 번이나 예수를 부인했던 것이다. 이 얼마나 인간의 나약함이 잘 비유된 이야기인가.
인간은 영원 불멸의 생명을 가진 존재가 아니다. 또 인간은 전능의 능력을 소유하지도 못했다. 유한한 생명과 유한한 능력밖에 지니지 못했기 때문에 인간의 하는 일에는 과오와 시행착오와 거기 잇단 회오가 따른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불신의 풍조가 만연하고 있다. <눈 뜨고도 코 베일 세상>이라는 속언이 이를 잘 반영하고 있다. 속임수와 고식지계는 개인과 개인 사이에 뿐만 아니라 공적인 일에서도 또 국가 사이의 일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인간도의는 땅에 떨어지고 공약은 식언되며 국가간의 신의 또한 저바림을 당하여 세계 도처에서 반목, 또는 총칼의 살육전이 벌어지고 있다. 조애석개하는 인심과 실현되지 못하는 사회 정의와 전쟁의 공포 속에 인류는 전율하고 있다. 그 위에 공해와 인구 증가와 기아의 공포까지 따르고있다.
이 책임을 자식은 아비에게 아비는 자식에게 젊은 세대는 기성세대에게 구세대는 신세대에게 갑은 을에게 을은 병에게 전가시키고 있다. 정객은 지성인을 탓하고 학자는 성직자를 탓하고 기업가는 교육자를 탓하고 교육자는 다시 정치가를 탓하고……이 끊임없는 악순환은 인간이 인간을 존경하고 긍휼히 여기는 마음을 좀먹고 있다. 인간으로 하여금 제각기 뿔뿔이 흩어져 고독하게 되는 요인이다. 지금 우리에게 시급히 요구되는 것은 피조물로서의 인간, 불완전한 인간에 대한 상호간의 이해와 사랑이다. 원망하기에 앞서 대화하고 동정하고 용서하는 자세와 마음가짐이야말로 모든 사회 체증을 내리고 갈등과 콤플렉스를 근원적으로 치유하는 명약이 될 것이다. 협동과 화해라는 아름다운 제수라야만 천주께서도 기꺼이 이에 공감하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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