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부터 1백8년 전인 서기 1866년.
그 해부터 6년 동안 한반도 전역에 천주교 대박해의 피바람이 휘몰아쳤다. 병인년부터 시작됐다 해서 병인박해라 이름하는 이 6년 동안에 혈제를 바친 신자는 무려 8천 명. 이들 중 24명이 꼭 6년 전인 오늘 복음위에 올랐다. 프랑스인 선교사 7명(주교 2명 신부 5명)과 한국인 평신자 17명. 이로써 한국 교회는 모두 1백3위의 복자를 모시게 되었다. ▲1968년 10월 6일「바티깐」발 외신은 이렇게 전한다. 『한국의 순교자 24명을 한국 교회 전체의 가경자로 선언하는 시복식이 6일 오전「로마」의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엄숙히 거행됐다. 전 세계로부터 약 5만명의 신자들이 운집한 시복식에는 7명의 추기경 25명의 대주교 및 주교 5백여 명의 한국 신자 2천5백여 명의 프랑스 신자들이 참석했다. ▲시복 선언이 끝나자 순교자를 현양하는 성가가 찬란하고 장엄하게 장식된 성 베드로 대성전에 울려퍼지는 가운데 서울대교구장 김수환 대주교가 대미사를 주례했다…바티깐방송은 시복식 실황과 교황 바오로 6세의 특별 연설을 한국어, 영어, 이태리어 불어 및 독어로 방송했으며…바오로 6세는 한국의 순교자는 영웅 정신과 굳은 신앙의 귀감이라고 말하고 모든 신자들은 이를 본받아야 할 것이라고 연설했다』
▲이 같은 순교 복자의 영광과 그 후예들의 영예는 문자 그대로 혈제의 소산이었다. 주교가 잡히자 자수를 하고 포졸들이 자수를 받아들이지 않자 10여리를 따라가며 애원하여 순교한 이도 있다. 모진 고문에 일단 배교하여 석방의 길을 택한 복자도 있었다. 19세의 조윤호로부터 72세의 정의배 회장에 이르기까지 24위의 복자들은 그 신앙의 굳셈과 용맹성과 대담성이 너무나 비범하여 어떤 두려움이 앞선다. ▲9월 복자성월을 지내면서 교회 어디서나「순교 복자」라는 말을 많이 들어왔다.
그러나 순교 복자들의 행적을 살펴보면 순교라는 말을 그렇게 쉽게 그렇게 무심히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순교 복자의 굳센 신앙심과 그 표양에 감복하며 존경은 하면서도 감히 가까히 갈 수 없는 것 같은 어떤 두려움이 일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 두려움 때문에 복자찬가를 더욱 힘차게 부르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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