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와 안 지도 퍽이나 오래된다. 조용히 흘러버린 10여년, 한 번도 멀리 있다는 거리감도 느껴보지 않았고 늘 나와 같이 있다는 안온한 마음. 그러던 그가 결혼한단다. 여태까지 그가 남자였다는 걸 못 느낄 만큼 나의 생활에 깊게 자리잡고 있었고 나는 우둔한 머저리였다. 그 소식을 들을 때 끝없는 절망에 허우적거렸고 모여 있던 정들이 고개를 들었다.
세월이 흐르면 모두 이렇게 가볍게 먼지 털듯 훌훌이 가버리는 것일까?
몇 달 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조용히 앉아 있으면 물기 어린 뜨거움이 가슴을 찌르고 박힌다. 정에는 이렇게 약한 나였던가 되돌아 보는 마음.
도저히 어울릴 수 없는 사이로 잡으면 안 되는 그 행복을 난 아꼈다.
하얀 얼굴과 차분하고 잔잔한 음성, 언제나 남을 위로할 줄 알고 예민한 관찰력으로 정확한 판단을 하던 그의 성격.
그의 결혼을 축하해야지 하는 다짐도 다 어딜 가고 지금은 이렇게 텅텅 빈, 가슴에 슬픔을 이기려고 쓴 자리를 또 쓸고 또 닦고 그가 보내주던 책들을 정리하고 항상 기구 속에 잊지 말자는 그의 말을 생각하면서 맑은 아침 기구 속에 그를 위해 기구드렸다.
그리고 그의 순탄한 앞날을 위해 남을 위해 처음으로 미사를 청했다.
생활의 의욕도 사물에의 애착도 그는 다 갖고 갔다.
소중한 모든 것을 풀잎 그늘에 곱게 묻고 머릿속 깊이 박힌 그의 환영을 떨쳐 버리려는 마음이 묘하게 엉킨 방황 속에 보이지 않는 손길에 열심히 매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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