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여름 피정 갔을 때의 일이다. 영세한 지는 십여 년이 되었지만 어쩌다 보니 이번이 첫 피정길이 되어 버렸다. 일정은 3박 4일.
가정부도 없는 집에 아빠와 아이들만 남겨 놓고 떠나기가 무척 망설여졌지만 아빠의 이해와『엄마, 집 걱정은 마세요. 제가 잘 돌볼 테니까요』하는 딸애의 기특한 말에 용기를 내어 오랜 세월 적자 가계부와 싸우느라 등한했던 신앙생활을 조용한 시간을 통해 다시 한 번 천주님의 자녀됨을 확인해 보리라는 생각에 조금은 상기된 기분으로 피정길에 올랐다. 그곳은 피정하기에 알맞은 고요하고도 아늑한 수녀원이었다. 숙소 사정이 여의치 않아 우리는 어느 성당에서 온 팀과 한 건물을 쓰게 되었다. 그날 저녁은 피곤해서 일찍 자리에 들어 모처럼 나만이 가지는 조용한 묵상의 기쁨을 누리며 지나온 생활, 약한 신앙심에 대한 부끄러움에 몸을 떨었었다. 옆방에서 들려오는 노래 소리. 여닫는 문소리에 흩어지려는 생각을 애써 줏어 모아가면서……
이튿날부터 미사, 기도 묵상이 반복되는 단조로운 생활을 하는 속에 어느덧 일정을 하루 앞둔 저녁 밤이 깊었다. 묵주의 기도를 드리며 산에 올라가 그동안 있었던 신부님의 강론을 생각하며『천주님, 건강한 육체와 단란한 가정을 이루게 하여 주신 당신의 은혜에 감사드리며 앞으로도 어떤 시련이 닥치더라도 헤쳐 나갈 수 있는 굳은 신앙심을 주소서』하며 기도를 바치고 있을 때였다. 웅성이는 소리와 뒤이어 기타가 울리더니 목청껏 노래를 불러대는 것이 아닌가? 그 길로 산을 내려와 버렸지만 초저녁부터 시작한 노래, 춤은 밤이 깊었는데도 끝내지 못하는 그들의 행동에 할 말이 막혔다. 피정이 무엇인가? 시끄러운 세상을 피해 조용한 곳을 찾아기도와 묵상으로 자기 심신을 다스리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들은 피정을 TV에서 흔히 보는 쇼와 같은 것으로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렇게 기타를 퉁기고 고고를 추고 싶었다면 구태여 피정이라는 명목 아래 고요한 수녀원을 찾아들 필요가 있었을까? 많은 사람들이 찾아드는 곳이라 혹시 외부인이 이와 같은 흐트러진 모습을 보고 난 후 그의 마음 속에 박혀지는 가톨릭의 이미지를 걱정 않을 수 없었다. 쓸데없는 노파심이라고 일축해 버린다면 할 말이 없지만 나 혼자만의 걱정이 아닌 많은 사람들의 공통된 걱정이라 해도 노파심으로만 돌려 버릴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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