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이맘 때가 되면 평신도의 주일이 돌아온다. 미사 때마다 평신자가 나와 강론을 하고 또 평신도 사도직 활동의 기금을 위한 헌금을 거둔다. 이와 같은 일을 몇 해 동안 되풀이해오다 보니 평신도의 주일에는 으레 그런 행사를 하는 것으로 되었고 또 그것으로 자족하게 된 것 같기도 하다.
물론 평신도는 일 년에 한 번 제 날이 있는 것도 아니고 평신도 사도직은 평신도의 주일에만 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이왕 전국 주교회의가 평신도사도직 중앙협의회의 건의를 들어 평신도의 주일을 정한 바이면 또한 그 뜻이 평신도 사도직의 계몽과 촉진에 있다면 그 뜻을 보다 효과 있게 펴는 방법의 연구와 실천이 아쉽다. 각 본당의 평신도 단체는 본당대로 각 교구의 평신도 단체는 교구대로 평신도사도직 중앙협의회는 협의회대로 한국의 현대 교회가 바라는 평신도 사도직의 초점이 무엇이며 그 효과적 활동 방법이 무엇인가에 관한 활기 있는 캠페인을 펴야 하겠다는 아쉬움이다.
평신도사도직운동이 세계적으로 일기 시작한 것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부터였다. 비오 12세 교황께서 1951년에「로마」에서 제1차 세계평신도사도직대회를 열게 하여 특히 평신도의 고유 사도직을 강조하였고 그 후 1957년에 제2차 세계 평신도 사도직대회, 1967년에 제3차 세계평신도사도직대회를 개최했던 것이다. 그런 세계대회가 개최되기까지에는 그 준비를 위한 수많은 단위대회와 지역대회가 있었다. 또한 1965년에서 1969년까지의 제2차「바티칸」공의회는 평신도 사도직 교령을 채택하여 전 세계에 선포하였고 교황청 내에 상설기관으로서의 평신도 사도직 사무국을 설치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이와 같은 현상을 지난 제2차 세계대전 후 오늘에 이른 전후 사회에 있어서의 교회의 구원사업이 특히 평신도의 사도직 활동을 필요하게 되었다는 것을 뜻하게 된다.
현대인들 가운데는 과거의 역사 속에서는 긴 전쟁이 끝난 후에 일어나기 마련인 여러 가지 죄악과 공황과 데까당스 문화를 알면서도 자신들이 지금 그 죄악과 공황과 데까당스 속에 있다는 것을 의식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2차 대전 후에 일어난 데까당스 문화는 모든 존재와 현상을 투쟁과 대립 속에서만 이해하려고 하며 상반되는 이해관계 조정과 힘의 견제 속에서만 모든 해결을 찾으려고 한다. 이와 같은 사고방식은 교회가 가르치는 사랑과 선과 정의의 사회를 추구하는 것과는 그 방향 감각이 크게 다르다. 모든 의미와 가치를 절대자인 하느님에게서 구하려는 신앙 감각이 뿌리 박기에는 너무나 거리가 멀다. 그래서 전후의 현대 사회를 구원하기 위해 가장 시급한 것은 먼저 이 지상생활과 그 사고방식 속에 복음적인 토양을 운반해오는 일이라고 할 것이다.
하느님의 말씀이 뿌리 박을 수 있고 잘 자랄 수 있는 비옥한 정신적 토양을 그리스도의 교회 안에서 운반해 와야 한다는 것이다. 이 일을 감당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자가 바로 평신도이기에 평신도사도직운동을 강조하게 된 것이다.
우리 한국 교회는 그 역사가 말하듯이 평신도의 교회에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오랫동안 극히 성직자가 부족한 교회로서 오늘에 이르렀기 때문에 평신도의 사도직 활동은 성직 사도직을 도우는 일면에서만 시종 하여 왔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는 동안에 한국 교회의 평신도들은 평신도로서의 고유의 사도직에 대한 각성이 부족하게 되었고 아직도 그 계몽의 필요성이 절실하다고 할 것이다.
교회의 구원사업의 대상은 바로 이 죄악의 지상 사회이다. 만약 이 지상에 죄악이 없었던들 하느님의 아들이 세상에 오시지도 아니했을 것이고 따라서 교회도 생기지 아니했을 것이다.
이른바 자유 진영 국가에서는 아직도 하느님을 들먹이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은 제 마음대로 하느님을 그려놓고 제 마음대로 하느님의 말씀을 풀이하고 있다.
자기의 관능과 욕망과 이익을 변호해 주는 하느님을 찾고 있는 사람들이다.
사람에게 음식이 필요한 것과 같이 현세인에게는 현세적 복리가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그 현세적 복리가 어떤 모양으로든지 하느님이 가르치신 구원의 복리로 연결되지 못할 때에 죄악이 생긴다. 따라서 현세인 속에서 현세적 복리를 방향 잡아 줄 사람들이 있어야 하고 구원의 복리로 연결시켜 줄 사람들이 있어야 한다. 이 일을 책임져야 할 사람들이 곧 평신도이고 그 소명이 곧 평신도 사도직이다.
현세적 생활에 깊이 뿌리 박고 사는 평신도들이 그 고유의 사도직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먼저 스스로가 바른 신앙 속에 살아야 하겠고 하느님의 말씀이 스스로의 언행을 통하여 현세 속에 스며들어야 하겠고 그 현세 생활이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의 존경과 모범의 대상이 되어야 하겠다. 예수께서 자신을 바쳐 교회를 세우심과 같이 우리들은 스스로가 그 복음의 씨앗이 되어 이 현세 속에 깊이 심어져야 한다.
세상을 썩지 않게 하는 소금이 되어야 하고 하느님을 찾아볼 수 있게 하는 빛이 되어야 하고 악한 사람을 선하게 만드는 누룩이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 모든 신자들은 현실에서 도피할 것이 아니라 남보다 더 현실에 충실해야 한다. 이것이 곧 신자 개개인의 현실 참여인 동시에 또한 교회의 현실 참여이다.
지상의 복음화를 위한 교회의 현실 참여는 그 목적과 방법이 함께 복음적이어야 한다. 부정의를 정의롭게 하고 불의를 의롭게 하고 악을 선하게 하는 복음적인 방법은 저주나 투쟁이 아닌 사랑이어야 한다. 현대 사회에 싸움이 그치지 아니하고 제 나름대로의 정의와 선이 난무하는 것은 힘의 지나친 대결과 이해관계의 날카로운 대립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현대 사회의 타락을 구하는 길은 힘이나 이익이 아닌 구원의 사랑이라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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