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잠시 생각한다. 지금 들이고 있는 연탄 값을 어머니에게 주고 나갈 것인가, 며칠 후에 주겠다고 할 것인가.
가방에 십여만 원이 들어있기는 하나 6월 첫 토요일까지는 채워 넣어야할 공금이라서다.
또 잠시 생각한다. 주일학교 야외미사 갈 아이 김밥 싸주는 문제를 발단으로 어머니와 치열한 공방전을 벌이고 삼위일체 대축일을 전후해「2박3일 지옥여행」을 다녀온 직후라는 것, 또 외상으로 인한 연탄집 아저씨의 맥 빠지는 기분과 우리 모녀가 치룰「빚진 죄인」의 「옥고(獄苦)」등을. 그래 즉시불의 용단을 내린다.
칠순 넘은 노모의 눈에 또 「피눈물」을 솟게 한 죄에 대한 보상금으로, 또 무엇보다도 이번「지옥여행」을 2박3일로 끝나게 해주신 하느님께 대한 감사로, 과감하게「공금횡령」의 위험을 무릅쓰기로 한다.
어머니와 내가 수십 년째 연례행사처럼 치러 오고 있는 이 「골육상쟁」도 다른 모든 무참한 전쟁처럼 쌍방이「피를 본다」. 이십대 청상과부의 무남독녀로, 목숨 바쳐 제 아비 눈을 뜨게 한 심청이만큼은 못할망정 이름도 심봉사와 똑같은 학규인 어머니가 이 고통을 감당하지 못해 「쇼크사」라도 하면 어쩌려고 이 미련한 행사를 치러대는지 나도 번번이 쇼크를 받는다.
단순무쌍하기가「왈가닥 루시」만한 어머니와 복잡다단하기가 싸르트르급인 내가 김밥싸기 갈등은 형이하학적 문제에서부터 「인간의 자유의지」같은 형이상학적 문제에 이르기까지 사사건건 부딪힐 수밖에 없는 게 우리 모녀가 일평생 지고 갈 십자가다.
그럼에도 「피는 물보다 진하고」「자비가 최고의 정의」라서 혈육간의 성격차이와 가치관의 차이로 인해 치루는「혈전(血戰)」이란 문자 그대로 가슴을 에이는 피눈물이 그 유일한 무기요 전리품일 뿐이다. 이 진하고 물컹한 연민 앞에서 모든 시시비비가 태양 앞에 촛불처럼 맥을 못 춘다.
그래도 너나할 것 없이 아둔한 우리 인간이 사흘이 멀다하고 이 싸움을 해대니 사랑 그 자체이며 지혜 그 자체인 하느님께서 「SOS(위급신호)」를 칠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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