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와 정치 권력과의 관계 문제는 일시적이거나 우발적인 것이라기보다는 항시적이고 본질적인 문제라 하지 않을 수 없다.양자가 모두 동일한 인간 자체를 대상으로 하기 때문만이 아니다. 역사가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고 현실이 말하고 있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뿐 아니라 이유적으로는 교회와 정치 공동체는 그 독자성이 인정되어 있고 그 성격과 기능과 영역이 구별되어 있는 것도 사실이나 실제로 교회와 정치 공동체는 완전 분리되어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나라 헌법 제16조에도 종교와 정치는 분리된다고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어느 종교를 막론하고 종교 자체가 정권에 의해서 간섭되고 변질될 수는 없는 것이며 교회 자체는 어떤 정치 조직과도 선택ㆍ친화력이 없는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한 정권이 한 종파에 의해서 지시되어지는 것도 용납될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며 더욱이 신교의 자유를 보장해야 할 책임이 국가에 있기 때문에 한 정권이 한 종교에 예속될 수는 없는 것이다.
종교와 정치는 독자적인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신앙공동체와 정치공동체는 불가분의 연관을 가지고 있다. 왜냐하면 교회를 이루는 신자도 국민이고 또 국민이 신자가 되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서 이 세상 안에서 인격 초월성의 표직이요 수호자인 교회는 어떤 특정의 정치 공동체에 대해 자기 초월성을 의식하며 방어하지만 현실적으로는 현재 국가 안에 있는 것도 사실이기 때문에 국가와 교회, 신앙공동체와 정치공동체는 서로 관계를 가지지 않을 수 없다.
이 관계는 서로 독자성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관계가 되어야 하고 상호 협조하는 관계가 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국가의 직무와 권한은 교회의 직무와 권한과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하더라도 결국 양자가 모두 동일한 인간 완성을 위해 봉사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역사적이고 지상적인 인간 삶의 풍요는 궁극적인 인간 완성을 떠난 비륜리적인 것이 아닐진대 국가와 종교가 장소나 시간의 환경을 고려하여 협력한다면 인간 이익을 위해 양자의 봉사가 더욱 효과적이 될 것이다.
다시 말하면 교회와 정치는 서로 분리되어 있으나 인간 완성을 위한 인간 사랑에 함께 기반을 두고 있기에 이 사상에 입각하여 정치공동체와 신앙공동체는 사랑의 유대를 가져야 할 것이다. 특히 신앙공동체는 사랑과 자비에 바탕을 둔 공동체이기에 모든 것을 사랑의 관계로 이룩하고자 함이 당연할 것이다.
이러한 이론을 근거로 한 우리의 안목으로 보건대 현재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한국 교회와 정치와의 관계 개선을 위해서는 교권과 정권은 각각 할 일이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먼저 양자 공히 성실한 대화의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다같이 나라를 걱정하고 겨레의 구원을 위해 헌신 봉사하는 지도자들이 대화를 하지 못할 이유를 우리는 발견키 어렵다.
일부 정치인은 종교가는 다만 영세적 구원에만 봉사하고 자기들이 관여하는 현세에 참가하지 말라고 말할지 모르지만 종교는 현세를 영세로 구원하는 것이기에 현실을 무시하지 못하는 것이며 또한 정치가 역시 현실 충족만으로 완성되는 인간상에 집착하여 인간의 영신적 가치를 전연 무시하지 못할 것이다. 또한 정치가도 신앙인이 되기를 우리는 바라고 종교가 역시 지도자로서 각자에게 부여된 참정권의 권리와 의무를 더욱 적절히 완수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도 대화는 가능하고 유익하리라 생각한다.
우리가 여기서 대화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것은 현사태의 일시적인 긴장 해소를 위해서나 혹은 시대 유행적인 처방으로서가 아니라 근본적으로 분리된 정권과 교권이 필연적으로 가지는 관계의 정상적 양식으로서 있어야 할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지금에 와서 대화를 강조하는 것이 이제까지 대화가 없었다고 생각해서도 아니요 앞으로 더욱 성실하고 활발한 대화를 기대하는 마음에서이다.
그러므로 어느 한편에서도 대화를 포기하거나 대화에 싫증을 느껴서는 안 될 것이다. 더욱이 대화를 단지 협상으로 생각한다든지 일종의 절충으로 생각해서는 절대로 안 될 것이다. 훌륭한 대화란 다같이 인간애에 기반을 둔 참된 사랑의 정신에서 가능하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최근 보도되는 사실들을 종합해 보면 우리나라에는 종교와 정치간의 대화가 원만치 못하고 서로서로 모두 일방적인 의사 표시를 하고 있는 듯한 인상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그 원인과 자신들을 정당화할 수 있는 이유야 어디에 있든 간에 불행한 일이라 아니 할 수 없으며 한시 빨리 진정한 대화의 분위기를 이루어야 할 것임을 재삼 강조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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