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언제나 아침 6시면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칸트의 산보처럼 정확했습니다. 잠시 화살기도를 마친 뒤 세수를 정결히 하고 성당엘 갔습니다. 경건한 마음으로 아침미사를 마친 후 집에 와 조반을 들고 직장엘 갔습니다. 언제나 하는 일이었지만 조금도 어렵지 않았고 조금도 귀찮지 않았습니다. 마음 속 깊이 즐거움이 샘솟듯 얼굴엔 항시 웃음이 깃들고 있었습니다. 하루의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왔습니다.
아내가 반가이 맞이했고 꼬마들의 재롱이 온 집안에 하나 가득 찼습니다.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를 했고 이런 일 저런 일들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또 감사히 하루를 마치는 기도를 드린 후 내일을 위해 조용히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그는 내일도 또 내일도 이와 같은 생활을 되풀이할 것입니다.
지극히 단조로운 생활이었습니다. 지극히 당연한 생활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아무도 그를 소시민적이라 비웃을 순 없습니다. 더더욱 그를 단순한 사람이라 욕할 순 없습니다.
우리 주위는 복잡하다고 합니다. 사실입니다.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지 겨우 내 코가 날라가는 것을 방지할 수 있습니다. 물밀듯 닥쳐오는 온갖 정보를 정확히 신속히 그리고 아주 조직적으로 처리해야지만 겨우 내 위치를 지킬 수 있고 또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본래 사람은 단순한 것입니다. 사람의 삶은 지극히 단조로울 수밖에 없습니다. 복잡한 현실을 핑계 삼을 것은 없습니다. 어린 아가들의 것처럼 그렇게 귀엽지도 않은 재롱을 부릴 필요도 없고 한참 커가는 아이들처럼 일부러 반항을 할 필요도 없습니다. 못된 어른들의 흉내를 구태여 낼 필요도 없습니다.
괴로운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어려운 일들이 수시로 다가옵니다. 불안합니다. 공포가 엄습합니다. 분노가 치솟습니다. 더군다나 가까운 이웃일수록 이러한 감정은 더욱 격렬해집니다. 온갖 욕정에 사로잡힙니다. 사리를 분간할 수가 없고 나에게서 헤어나기가 힘이 듭니다.
고고춤을 밤 새워 추어보아도 온갖 부귀영화를 한 몸에 누려보아도 끓어오르는 욕정을 한껏 채워보아도 창과 칼을 휘둘러 내 온갖 격정을 달래어보아도 결국은 똑같은 것이 남을 뿐입니다.
꼭 같은 원점으로 되돌아갈 뿐입니다.
그래서 사람의 삶은 단조로울 수밖에 없습니다. 애써 복잡화할 필요가 없습니다. 애써 하늘을 향하는 마음을 마비시킬 필요가 없습니다. 땅에 묻힌 새싹은 언제나 햇볕을 향하기 마련입니다. 많은 영웅이 많은 시인이 이러한 사람의 본성을 살아왔고 또 노래하지 않았습니까.
인간의 격정이 사라져간 잿더미 위, 인류의 격정이 휘몰아쳐간 페허 위에서 그곳에 남을 수 있는 것은 오직 진실한 한 인간의 소박한 삶, 단순한 삶, 뜨거운 사랑의 삶만이 남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래야만 다시 똑같은 원점으로 되돌아가지 않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당신에게서 받은 내 눈으로 얼마나 차마 보지 못할 일들이 이 세상엔 많기만 합니까. 당신을 찬미키 위해 있는 내 입에서 얼마나 많은 더러운 것들이 이 세상에 뱉어지고 있습니까. 그 악취가 온 누리를 뒤덮는대도 사람의 코가 그 냄새를 맡을 수 없습니다.
주일 오후 이러한 것들을 잠시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옛날 유년반에서 외워둔 봉헌의 기도를 드리고 싶어집니다.
『천주여 너 너를 위해 나를 내셨으니…』
▲지금까지 허영자씨가 수고해 주셨습니다. 이번호부터는 서영석씨가 집필해 주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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