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은 빨라 또 한 해의 대림절을 맞이하게 되었다. 74년의 한 해도 저물어가고 대망의 성탄과 75 새해를 맞이하는 이때에 지나간 일 년의 신자 생활을 반성하면서 다가오는 성탄 맞이를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를 생각해 보고자 한다.
대림절이란 희망과 회개의 때임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또 대림절은 구약의 이스라엘이 오랫동안 메시아를 대망했던 그 정신으로 구세주 예수의 탄생을 기다리는 숙망과 동시에 이 세상 종말 완성 때의 재림하실 예수를 영접할 차비를 마련하는 마음 자세를 뜻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대림절은 하나의 큰 희망의 때이다. 그러나 이 희망을 달성하는 데는 회개란 절대적 조건이 부가된다. 구약의 많은 예언자들이 이스라엘의 회개를 촉구했음은 물론 세례요한의『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다』는 요르단강의 외침이나 갈릴레아 전도 시작 때『회개하시오.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습니다』고 선포하신 구세주 예수의 첫 말씀을 보아서 하늘나라 즉 구원을 얻는 유일하고 절대적인 조건은 바로 회개임이 명백하다. 그러므로 대림절은 회개의 때인 것이다.
그런데 회개는 바꾸어 말해서 개과천선을 뜻한다. 마땅히 하지 말아야 할 잘못을 고치고 마땅히 해야 할 착한 일로 나아가는 것을 말한다.
우리 그리스도교 신자들의 우와 선의 표준은 하느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의 실천 여부에 있음은 예수께서 우리에게 주신 새 계명(요한 14ㆍ34ㆍ35)에 의해서 분명하다.
그러면 지나간 한 해 동안의 우리 신앙생활에 있어서 과연 사랑의 생활 실천은 어떠했는가를 깊이 회고 반성하는 것과 성탄을 맞는 새해에는 적어도 같은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는 결의를 굳게 해야 할 것이다. 또 사랑의 실천적 양태를 대별해 본다면 적극적인 사랑의 행동화 즉 작위적인 면과 소극적인 사랑의 결핍 즉 부작위적인 면의 두 가지이다. 전자의 경우는 봉사의 형태로서 만사에 있어서 도움이 필요한 이웃에 대한 일체의 도움을 주는 것이겠고 후자의 경우는 마땅히 해야 하고 또 능히 할 수 있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의식적 또는 태만으로 이웃을 돌봐주지 않거나 더 나아가서 이웃을 해치는 일들이다. 이 두 가지 형태에서 우리는 과연 어떤 채점으로 74년을 보내고 있는가? 우리는 교회를 위해서 또 사회를 위해서 나라를 위해서 얼마만큼 도움 되는 일을 했는가. 그렇지 않으면 그 반대로 그것들에게 해로운 일들을 저지른 일이 없었던가? 하느님을 외면하거나 멀리한 일은 없었던가? 이웃들과 즉 동료간이나 상사나 수하 사이에 불화 불행은 없었던가?
금년 한 해는 특별히 75 화해의 성년을 준비하는 해이었다. 과연 우리는 다툼이 있는 곳에 용서를 베풀었고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이루었던가? 용서가 없이는 화해가 이루어질 수 없고 또 화해가 없이는 일치는 성취될 수 없다. 사랑은 용서하는 것이라고 사도 바오로는 설파하고 있다.또 사랑의 극치는 하나 되는 一치에 있다는 것을 사도요한은 그 복음에서 역설하고 있지 않는가(요한 17ㆍ20-24)뿐만 아니라 제2차「바티깐」공의회는 교회의 일치성을 강조한 나머지 그 교회 헌장에서「교회는 일치의 성사와 같은 것」이라고 언명하고 있다. (1장 1조) 이와 같이 우리의 사랑 실천의 반성은 적극적 봉사의 행동화의 문제와 소극적인 사랑의 결여 즉 불화와 불일치에 관한 문제이다. 현실의 당면 문제로서 우리는 적극적인 면보다도 오히려 소극적 면의 문제가 더욱 시급한 과제인 것 같다. 지금 보내고 있는 이 해의 큰 잇슈(사건)은 무엇보다도 역시 교회의 대사회적 차원의 문제에 있다. 그런 의미에서 금년 한 해는 한국 교회 역사상 가장 다사다난했고 또 가장 의의 깊은 해였다고 볼 수 있다. 속지하는 바와 같이 원주교구장 지학순 주교의 피원 사건을 계기로 해서 그와 구속 인사들의 석방을 위한 기도회로부터 시작된 우리 신자들의 행동은 점차로 차원을 높여서 드디어 인권 회복의 기본적 사회 참여의 단계에까지 도달한 사실이다.
이는 교회 내적 사건으로서의 겨자씨 같은 활동으로 시작되어서 실로 예기치 않았던 대사회적 차원의 결과를 가져오게 된 것이다. 이는 바로 교회의 현대화 사명을 선포한 현대 세계 사목 헌장의 정신과 74「로마」주교 대의원대회의 선언문의 취지에 전적으로 부합되는 행동으로서 교회의 현대적 사명을 실천하는 데 유감이 없는 일이었다. 이때에 있어서 우리 교회의 각 분야의 신자들의 마음가짐과 행동에 있어서 과연 우리는 진정으로 일치하였으며 화해가 이루어졌던가? 솔직하고 진지하게 우리 각자는 반성하고 회개할 것이 없겠는가?
오늘날의「교회와 사회」에 대한 견해에 있어서 다소의 차이는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대국적 견지에서 교회의 세계관ㆍ사회관의 방향이 정립된 이상 기존의 아숙에 집착함이 없이 대동일치해야 하겠고 또 이를 위해서 서로가 용서와 사랑과 위로와 존경의 정신으로 글자 그대로의 화해의 성년이 이루어지기를 촉구하여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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