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실의 요한씨가 하느님 곁으로 갔단다. 새벽 침대 속에서 그 소리를 듣고 나는 용수철처럼 튀어 일어났다.
─기어히 떠나버리고 말았구나─.
운명의 검은 그늘이 시시각각 짙어져도 그렇게 태연하던 그. 마치 귀빈을 맞는 영국 신사처럼 죽음을 영위하던 그가 영원에 귀향하고 말았다니…. 예기는 했지만 막상 당하고 보니 몹시 허하고 슬펐다. 그는 병이 고비에 이르렀을 때 대세를 받은 교우였기에 하느님에 대해서 극히 기본적인 것만 알고 있었다. 교우들이 자주 심방을 가지만 호흡이 워낙 까빠서 얘기를 듣는 것도 하는 것도 그에게는 어려운 일이었다. 그래서 우리들은 성심껏 기도만을 드릴 뿐이었다. 그런 그가 며칠 전에는 하느님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가르쳐 주기를 원했다. 푸른 형광등 아래 버려진 휴지 같은 육신을 끄을고 초라한 생존에 진력을 다하던 그가 오랜 침묵을 깨고 뱉은 언어였다. 나는 그 말을 들었을 때 적잖이 놀랐다. 하느님이라는 단어는 들어본 적도 드문 두메 사람인데다가 오늘 내일하고 잔명을 잴 수 있을 때 대세를 받았고 그 후 지금까지 지극한 통증에 시달리면서도 신음소리조차 삼가던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고통의 하소나 절규도 아닌 하느님에의 깊은 신뢰를 발견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재기 불능의 건강에 대한 자학도 비소도 아닌 절대자에 대한 갈구요 원망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불행히도 나는 그날 그의 요구에 응하지를 않았다. 몸이 몹시 피로하다는 이유에서다. 내일 와서 가르쳐 주겠다는 약속을 하고 내 병실로 돌아왔다. 헌데 그 내일은 모레가 되고 모레는3 일째가 되었다. 드디어 오늘 새벽 그는 먼먼 여로에 오르고 말았다.
이제 어디로 어떻게 찾아가서 그 대답을 들려줄 수 있단 말인가…. 왜 그랬을까 왜그렇게 무심했을까. 피안의 세계에서 상봉했을 때 무어라고 그 게으름을 사과할 수 있을까. 하느님에 대한 당신의 작은 앎을 전하는 데 왜 그토록 인색했소 하면 무슨 대꾸를 할 것인가. 목 마른 자에게 물 한 모금을 왜 그렇게 아꼈을까. 아아 후회가 인다. 낙엽을 몰아도는 회오리처럼 아픔이 고인다. 기도가 흐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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