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이 삼라만상을 창조하실 때에 그 주재자로서 당신 모상을 닮은 인간을 창조하셨다. 인간은 하느님의 창조사업의 협조자로서 창조되었기 때문에 처음부터 그 계획에 따른 인간으로서의 존엄한 품격이 부여되었다. 이것을 인간의 존엄성이라고 부르고 있다.
그러므로 인간이 왜 존엄하며 또 어떻게 존엄한가는 오로지 하느님의 창조 의사 속에서 그 해답을 찾아야 한다. 인간이 존엄한 이유는 하느님의 창조사업의 협조자로서의 사명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비록 하느님을 모르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스스로의 이성과 양심에 따라 최선아(最善我)를 실현하려고 하는 비전을 가졌기 때문에 역시 존엄한 것이다. 그래서「인간은 인간이기 때문에 존엄하다」고도 한다. 모든 사람은 나면서부터 생존할 권리와 자유 평등의 권리를 타고났다. 또 무엇이 옳은 것인가를 찾고 옳다고 믿는 바에 따라 행동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 이와 같이 인간은 스스로 옳은 것을 찾고 옳은 일을 행하는 권리의 주체인 동시에 그렇지 못한 행위를 했을 때에는 그 책임을 지는 의무의 주체이기도 하다.
사람이 산다는 것은 결코 숨을 쉬고 맥박이 뛰고 있다는 동물적인 생리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삶이 다른 동물과는 달리 존엄하다는 것은 그 생명이 항상 옳은 것을 찾는 가치 세계를 추구하고 있다는 데 있다. 따라서 그 생각과 행동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한다. 실존주의 철학자로서 유명한「가브리엘ㆍ마르셀」은 인간은 언제나 죽어야 하는 유한한 존재라는 것을 스스로 잘 알고 있으면서도 그 죽는 순간까지 가치 세계를 향하여 살아간다는데 인간이 본질적으로 존엄하다는 원리가 있다고 하였다.
드러나게 인간의 존엄을 강조한 역사적 기록을 들어보면 기원 전 4세기 그리스의 제논에 의해 창설된 스토아 학파에까지 올라간다. 스토아 학파의 철학자들은 인간 개개인의 인격을 존중하고 인류의 자유와 평등과 존엄을 강조하였다. 인간은 나면서부터 타고난 권리가 있고 지켜야 하는 법이 있다고 하였고 또 나면서부터 타고난 이성에 따라 어떤 것이 옳고 어떤 것이 그른가를 판별할 수 있다고 하였다. 그 질서 속에서 인류 공동체인 세계 국가를 세우는 것이 그들의 이상이었다. 그 학파에 속했던 로마의 키케로는『만약 국민의 의결, 군주의 칙명 및 재판관의 판결에 의하여 정해진 것이 모두 법이라고 한다면 절도ㆍ이혼도 서명만 있다면 허위의 유언서라고 할지라도 다수의 동의와 의결에 의하여 허락된다면 합법적인 것이 될 것이다.』라고 비꼬았다.
과연 인간의 질서 가운데는 권력이나 다수결만에 의해 좌우될 수 없는 기본적인 질서가 있다. 즉 인간이 창조될 당시부터 하느님이 계획하신 질서이다. 이것을 자연법이라고 한다.
그래서 자연법은 인간이 하느님의 창조사업에 참여하는 질서라고도 한다. 이 자연법 가운데 누구도 침해하여서는 아니되는 모든 인간에게 주어진 천부의 권리가 있다. 이 권리를 인간의 기본권 또는 인권이라고 한다. 이 인권사상이 구체적 권리로서 표현되고 크게 강조된 것은 역시 근세에 와서의 일이었다. 즉 신체의 자유 거주 이전의 자유, 주거의 자유, 통신의 자유, 신앙의 자유, 사상ㆍ양심의 자유 언론ㆍ출판의 자유, 집회ㆍ결사의 자유 학문ㆍ예술의 자유, 재산권의 보장 등과 같은 자유권과 만인이 법 앞에서 평등한 대우를 받을 권리인 평등권과 국정에 참여할 수 있는 참정권과 국가로부터 적극적인 이익을 받을 수익권 등이었고 그 후 19세기 말에 와서 국가로부터 인간다운 생활의 보장을 받을 생존권이라는 사상이 첨가되어 오늘의 인권 개념의 내용을 이루고 있다.
그런데 지금 우리 사회에서는 이 인권 개념이 큰 물의를 일으키고 있다.
한편에서는 인권 침해를 규탄하는 함성이 일고 있고 또 정부를 비롯한 한편에서는 궁극적인 인권의 침해를 예방하기 위해 부득히 어느 정도 자유권의 제한이 불가피하다고 하고 있다. 인권의 구체적 개념은 확실히 역사성을 띠고 있다. 고대의 인권과 중세의 인권과 근세 초기의 인권과 오늘의 인권 개념이 동일하지 아니했던 것은 사실이다. 특히 자본주의 사회에 있어서의 오늘의 인권 개념은 모든 국민이 국가로부터 인간다운 생활과 행복의 보장을 요구할 수 있는 권리로까지 확대되었고 따라서 국가는 국민의 인권을 보장하기 위해 국민 생활에 적극적으로 간섭하기 시작하였다. 즉 국가가 국민 전체의 복리를 위해 개인의 자유를 어느 정도 제한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 제한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국민의 인권을 고르게 보호하는 데 있어야 하고 또 그 제한의 정도는 인권의 본질을 침해하는 것이 아니라야 한다. 그러나 국민 전체의 복리가 무엇인가에 대하여는 반드시 그 해답이 같을 수 없고 인권 제한의 정도에 대하여도 서로 그 견해를 달리할 수 있다. 그뿐 아니라 그와 같은 대상과 한계의 애매함을 악용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오늘의 인권 시비가 일게 된 것이다. 종교인이 보는 인권과 하느님을 믿지 아니하는 사람들이 보는 인권의 개념이 서로 다를 수 있고 정부나 집권당이 보는 인권과 학생들이나 야당이 보는 인권의 구체적 양상이 서로 다를 수 있다. 더구나 우리 사회와 같이 불신의 풍조가 높고 국가 안보가 크게 위협 받고 있는 실정하에서는 더욱 그 한계의 측정이 어렵고 애매하다.
이와 같은 현실 속에서 제26회 세계인권선언 기념일을 맞게 된다. 이 기회에 특히 권력과 금력을 가진 자들은 그들의 인권 개념을 다시 한 번 반성해 보고 또 그들의 힘이 진실로 국민의 복리와 인권의 보호를 위해 쓰여지고 있는지 깊이 반성해야 할 것이다. 또한 인간의 존엄성은 힘의 대결이 아닌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는 사랑의 사회 속에서만 보장될 수 있는 것이기에 권리, 의무나 인권의 한계를 따지기에 앞서 서로의 봉사와 인류애를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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