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솔 가지를 꺾어다 대림관을 만들었다. 가시처럼 뾰족한 솔잎이 자꾸 손을 찌른다. 지난 여름 대문을 칠할 때 쓰다 둔 고구마 장수 장갑이 생각났다. 뺀찌도 가져왔다. 가위도 필요하다. 철사가 모자란다. 아내가 뒷집 최선생 댁엘 달려갔다. 성당의 제대 앞에 것처럼 그렇게 멋드러지게 예쁘진 않았지만 그런대로 어지간히 모습을 드러내었다. 빨간 초 네 개를 가져다 꽂았다.『야 아빠 근사하다』시종 신이 나 옆을 떠나지 않던 꼬마들이 환성을 올렸다. 나도 신이 났다.『이건 바오로 것 이건 안드레아 것 저쪽 껀 엄마 것 그리고 이건 아빠 꺼다 그렇지?』식구마다 용케도 초 한 개씩이 돌아갔다.
『아빠 와 한 개만 키노 응』지독한 경상도 사투리다. 그럴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와 내 꺼하고 엄마 꺼 아빠 꺼는 안 키노 응』『안드레아 껀 이 다음 주일 날 켜야지』
『엄마 껀 또 다음 주일 날 엄마 성당 갔다 오면 켜고 또 아빠 껀 아빠 학교 갔다가 또 성당 갔다 오면 켜고 그라마 네 개 다 키제』『야 그럼 예수님 오시고 싼타 할아버지 선물 많이 갖고 온다』 제 형 하는 말만 부지런히 힘겨워 흉내 내던 둘째놈도 선물 많이 갖고 오는 건 신이 나는가 보다. 빨간 초가 타오르는 책상 앞에서 알아들을 수 없는 그 많은 어른들의 것 그래도 아름답기만 한 듯 신비하기만 한 듯 동심에 가득 찬 두 눈을 한참 깜박거리다 둘 다 잠이 들었다. 기다림의 소망, 이것처럼 더 강열한 생명의 원동력이 또 있을 수 있을까. 죽음이 이 애타는 나의 기다림을 앗아갈 때까지 차라리 예수님 자체을 이러한 기다림으로 표현코 싶다던 그 신부님의 말씀은 한 편의 시만 같았다. 이러한 기다림의 소망을 나는 꼬마들에게 심어주고 싶었다.
얼마나 어렵게 자란 신혼부부의 혼배성사에 증인을 선 일이 있다. 신혼여행을 마친 후 내집을 찾아주었다. 차가운 방에 우선 난로를 짚히고 우린 술잔을 기울였다.
얼마 없는 친척이지만 모두 와 주지 않았고 친형도 오질 않았다고 했다. 얼마나 섭섭했을까. 외롭게 어렵게 힘겨웁게 자라온 그들임을 알기 때문이다. 우린 섭섭한 게 많이 있을 수 있다고 했다. 부모에게 형제에게 그렇지만 그러한 것들을 우리 자손에게만은 넘겨주지 말자고 했다.
그래야만 무엇인가 조금씩은 낳아질 수 있지 않겠는가 하고 의견을 모을 수가 있었다. 차갑던 방 안이 훈훈하듯 마음도 한결 훈훈했다.
일본에서 오랫동안 공부하다 돌아온 동료 교수의 집에 초대되어 가 깜짝 놀란 일이 있다. 아파트를 얻고 새 살림을 시작할 때 시골서 어머니가 식모 아이를 하나 데리고 왔단다. 저녁을 먹을 때 한 상에 앉지 못하게 했단다. 이것만은 어머니에게 양보할 수가 없었다고 한다. 이렇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가고 했다. 나에겐 커가는 아이들이 있다고 했다. 어떻게 그들에게 사람을 차별하는 법을 벌써부터 가르쳐 줄 수가 있는가고 했다.
대림관의 빨간 네 개의 촛불 그 불빛이 활활 타오르면 성탄은 올 게다. 그리고 또 한 해는 지나가 버릴 게다/ 어른이 되어도 선물은 없어도 애타게 당신을 기다리는 강열한 기
다림의 소망만은 남아줄 수 있을 게다. 무엇이 더 값진 것인가를 알 수 있어 줄 게고 당신을 기다릴 수 있기에 천국의 보화가 묻혀 있는 척박한 땅을 땀 흘려 팔 수가 있을 게고 당신의 값진 진주알을 보았을 때 그들의 모든 것을 팔아버릴 수 있어 줄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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