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잡다난했던 한해가 또 저물어 간다. 이 세상에 일어났던 수많은 사건과는 상관없이 내일을 위한 태양은 또 솟아오른다. 인간은 새롭지도 않은 바로 어제 진 그 해를 바라보며 내년만은 무엇인가 소원 성취될 것을 바라고 있다.
바라고 싶은 마음에서 다짐하는지도 모를 일이다. 징글벨의 음악소리와 쇼윈도의 장식은 구세주 탄생을 재촉이라도 하는 듯하다. 거리마다 자선남비 불우한 이웃돕기운동 자선 음악회 등 성탄맞이가 활발한 느낌이다. 언제 누가 시작했는지는 모르지만 매년 이때가 되면 가난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위해 자선이 베풀어진다. 마치 이 운동에 빠지면 유행하는 옷을 못 사 입은 기분이 드는 듯한 감마저 준다. 특히 올해는 그 운동이 범국민운동화되고 있는 것은 비단 정부의 호소때문만은 아니리라 생각된다. 날로 삭막해지고 인정이 메말라가는 이때 나만이라고 베풀어보고 싶은 심정인지도 모를 일이다. 남을 도와주고 싶은 마음에서 자발적으로 일어나는 자연발생적 운동이라면 오죽 좋은 일이겠는가. 어떤 의미에서는 자신을 달래고 싶은 심정에서 나도 희생을 할 줄 안다는 것을 과시하고 싶은 마음에서, 아니면 메마른 자신을 스스로라도 녹여보고 싶은 마음에서가 아닐는지. 마치 차가워져 가는 두 손을 비빔으로 따뜻함을 느껴보고 싶은 마음에서라면 남을 도운다는 것보다는 오히려 내가 베풂을 받는 격이 되고 만다. 어떤 방송국에서「사랑의 음악회」를 주최하고 시중 각 은행에 도움을 청했더니 40여개 되는 은행 전부에서 도우겠다는 총액이 고작 2만 원 남짓하다고 들었다. 이것이 돕는 것이냐 하는 반문을 아니 할 수 없다. 남을 도운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 알지도 못했다면 말해 주겠다. 내가 입고 싶고, 내가 먹고 싶어 만들어 놓은 것을 아낌없이 이웃에게 베푸는 것이다. 가난한 사람은 항상 나쁜 것만 먹고 나쁜 옷만 입으라는 법이 있는가. 불행에 시달리고 슬픔에 의 의욕마저 잃어가는 이웃 형제에게 마음에서 우러나는 이웃 돕기가 되어야겠다.
흔히 천재지변으로 고생하는 형제들에게 도우는 것은 헌 옷가지 등이다. 이것이 과연 남에게 도움을 주는 자선이겠는가 생각해 보자.
평화 행복의 복음을 전하려 세상에 태어난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의 온갖 죄악상을 보고『회개하라』했다. 마음을 다시 고쳐 먹지 않으면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했다. 과연 그때 사람들은 어떤 상태에서 사는 사람들이었기에 그리스도가 가장 싫어했던 사람들은 바리세이파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바리세이파 사람들은 스스로가 가장 의인인 줄 알고 있었다. 여기에는 근본적인 관점 차이가 있었을 것이다. 바리세이파 사람들은 재산의 십분지 일을 하느님께 바쳤고 남과 달리 제도 많이 지켰고 세리들과는 달리 대우도 받고 계명또 잘 지켰다 한다. 인간의 눈에 의인으로 보인 사람들이 신의 눈에는 악인으로 보였다면 무엇인가 잘못된 点이 없지 않았을 것이다. 인간이 인간을 보는 눈은 잘못 볼 수도 있을 것이고 그러기에 오해도 생긴다. 그러나 하느님의 눈은 잘못 볼 수 없는 진리의 눈이요 공정 공의의 눈일진대 스스로 가장 의인이라 자처하는 사람들을 독사의 종류라고 혹평한 것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다난했던 이 해도 저물고 있다. 만일 오늘 이 땅에 그리스도가 태어났다면 무엇이라 했겠는가? 인류의 구원을 위해 스스로 종의 형태로 세상에 태어나고 극형을 감수했던 그리스도는 오늘날 구원을 받아야 할 우리 인간들에게 무엇을 외쳤겠는가. 구세주는 십자가에 달리고 구원받아야 할 우리는 안락하게 앉았을 것을 생각해보자. 스스로를 희생의 제물로 바친 그리스도는 안일과 이기주의의 인간을 무엇이라 했겠는가. 자신의 전부를 생명까지도 아끼지 않고 바친 그리스도는 구원의 교회와 그 사업을 위해 냉담한 크리스찬들에게 무엇이라 했겠는가.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려 편태와 제로서 일생을 보낸 그리스도는 가난한 형제에게 따뜻한 눈길 한 번 돌리지 않고 있는 우리에게 무엇이라 했겠는가. 더 근본적인 물음을 생각해 보자. 오늘 그리스도가 이 땅에 태어났다면 어떤 부류의 사람들에게 독사의 종류라 했겠는가. 위정자 부자 성직자 수도자 크리스찬, 아직 그리스도를 모르는 사람 등 그 중 누구에게『앙화를 받을 자들아』하고 저주했겠는가. 역사 중에 그리스도는 한 번밖에 태어나지 않았지만 우리 마음에는 순간순간에 태어나고 있다. 역사 속에 태어난 그리스도나 순간순간 우리 마음 속에 태어나는 그리스도는 다를 바 없는 꼭 같은 그리스도다. 2천 년 전 위선자들이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은 것이나 오늘 우리가 일상 생활로서 순간마다 편태를 가하고 십자가에 못 박는 것이나 다를 바가 무엇인가.
우리 자신들에게 물어 보자,
자유와 정의 구현은 구호에 달린 것이 아니다.
인류 복지는 탁상 메모지에 붙어 있는 것이 아니다. 구호와 회의로써 정의 구현과 복지를 이룩하려는 우리들의 방에는 추운 날 난방 장치가 되어 있지만 가난한 형제들은 냉돌에서 새우잠을 잔다는 것을 입지 말아야 한다.
만일 그리스도가 다시 이 시점에서 태어난다면 우리들에게 외치리라.
『이 독사의 종류들아. 너희 정의는 혀 끝에 있고 인류 복지는 너를 위한 것이냐』고 『이 위선자들,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은 입으로 말하고 실천 없는 네 사랑을 무엇에 쓰겠느냐』고『하늘까지 올라갈 줄 아느냐. 지옥으로 떨어지게 되리라』 하고 불의를 탓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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