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를 맞이함에 있어서 지난해를 회상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또 지난해를 말할 때는 다사다난했었다고 하는 것이 예사이다. 그러나 신해의 묵은 해는 정말 일과 말이 많았던 해이다. 이미 본란 송년사에서 큼직큼직한 일들에 대해서는 언급했지만 세말이 박두하여 뜻하지 못했던 비상사태의 선언과 이에 따른 국가 보위법의 비상 통과가 있었고 또 세계 화재 사상 유례가 없는 대연관호텔 화재 사건은 고요한 성탄절을 무색하게 한 일대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이와 같은 작년 종말의 양대사건은 우리 국민들에게 지대한 우려와 긴장을 가져다 주었다. 따라서 새해를 맞이하는 데 있어서도 밝은 희망보다는 어딘가 무거운 걱정 속에 잠기는 느낌을 금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 교회는 금년 임자의 새해를「정의와 평화」의 희망찬 해로서 맞이하게 되었다.
교황 바오로 6세께서는 제5회 평화의 날인 1월 1일을 기해서「정의와 평화에 관한 메시지」를 발표하였고 또 한국 주교단에서는 새해를「정의와 평화의 해」로 설정하였다. 이는 작년 가을에 있었던 세계 주교 대의원회의(시노드)에 있어서의 세계 안의 정의 문제가 가장 큰 의제가 되었던 것과 관련이 있고 또 한국 안에서의 획기적인 대사회 발언이었던 주교 공동 교서의 내용을 실천에 옮기고자 하는 깊은 의도가 내포되어 있는 것이다.
먼저 정의와 평화의 올바른 개념과 또 그 량자의 상호관계를 교황 메시지에 의거해서 간단히 요약해 보고자 한다. 메시지는 정의를 정의하여 말하기를『정의는 인간에 대한 성실한 감정이요 확고불동한 녀신이요 범할 수 없는 질서이요 평화이다』라고 규정하면서『우리는 왜 평화를 실현하고자 하면서 정의 이외의 기초를 쌓으려고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가?』라고 반문하였다.
또 메시지는 평화에 대해서 말하기를『평화는 인간에 대한 성실한 가정에 뿌리 박고 있기 때문에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하는 평화라야 진정한 평화이다』라고 역설하면서 동시에 평화를 힘에 의해서만 유지하려는 것을 경계하고 불합리한 독재정치, 위압적 억제, 서로 대립되는 힘의 계속적 균형 등등에 의한 평화는 일시적 외형적 평화에 그치는 것이며 진정한 의미의 평화는 결단코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였다. 그리고 결론적으로『평화를 원한다면 정의를 위해 일하라』고 힘차게 호소하였다.
그러면 이와 같은 교황 메시지의 의향에 비추어 우리 한국의 사회 정세와 교회 사명을 감안하여 볼 때 과연 어떠한 문제점을 발견할 수 있겠는가?
『평화의 이상은 그와 반대되는 사상이나 행동으로서 위협받고 있는 그곳에 더욱 절실히 요청되는 것이라』고 지적된 바와 같이 정의도 그와 반대되는 부정불의가 범람하는 그때와 그곳에 더욱 강렬하게 요청되는 것이다.
한국의 현 사회 실태가 바로 그런 때이고 그런 곳이다. 오늘날의 부정부패는 세인이 공지하는 사실이고 또 이를 시정하고 숙정하려는 노력을 각계각층에서 경주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현하의 부정부패와 퇴폐풍조는 이미 만성화 고질화되어 예사로운 방법으로는 도저히 효과를 거둘 수 없는 처지에 놓여 있다. 이런 때에 당하여 우리 교회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교회의 사명은 인류 구원에 있는 것이고 그 구원은 현세와 영원을 같이 봐야 할 것이다. 현실의 부정과 불의를 目도하면서 이를 오불관언, 대안의 화재시 한다면 이는 교회의 사명을 크게 망각한 것으로서 사회 안에서의 교회 불재를 자초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난해의 주교 공동 교서는 참으로 시선에 적절한 관심의 표명이었고 또 이번 성탄의 김 추기경의 크리스마스 메시지에서도 명쾌하게 표현되었다.
무엇보다도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는 지상명령을 받고 있는 우리 교회는 항상 의에 굶주리는 자세를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바오로 6세 교황은 전 세계를 향해 정의와 평화의 메시지를 호소하였고 한국 주교단은 작년의 공동 교서에 이어 금년을「정의와 평화의 해」로 선포했다.
이것은 새해를 기해서 교회가 진정코 정의와 평화를 구현하는 실천운동에 나서겠다는 굳은 결의의 표명이라고 하겠다.
그러면 그 실현 방안은 무엇이겠는가? 여기서 일일이 구체적인 사례를 지적할 수 없다. 그러나 어떠한 명확한 방향제시는 있어야 되겠다. 본란은 이 문제를 두 가지 방향에서 보고자 한다. 하나는 대외적 즉 교회 자체 안에서 보아야 하겠다. 먼저 사회를 향해서는 모든 부정과 불의에 대해 엄정한 예언자적 입장에서 단호히 고발하여 경종을 울려야 하겠고 또 교회 내부 자체는 먼저 스스로 일체의 부정이나 불의를 범하지 않을 것은 말할 나위도 없거니와 어떠한 부정에도 협조하거나 가담되지 말아야 하겠다. 우리 스스로가 어둡고 약한 구석이 있다면 어찌 감히 사회나 다른 사람들의 탈을 잡을 수 있겠는가. 이러기 위해서는 교황 메시지에서 호소한 바『자기의 위신 손상이나 희생 없이는 정의와 평화는 얻어질 수 없다』는 것을 명심해야 하겠다.
또 주교 공동 교서의 마지막 호소에서도 우리의 손해를 각오해야 정의를 쟁취할 수 있다고 비장한 선언을 한 바 있다. 교회는 권력이나 명예나 재산을 요구하지 않는다. 오직 교회는 사회의 구원이 요청될 뿐이다. 정의를 위해 평화를 위해 희생과 손해를 무릅쓰고 교회는 교회 안에서 사회 안에서 사명감을 실천할 때가 왔다. 이를 위해서는 우리 모두의 영웅적 용기가 필요하다. 레온부로와가『영웅성이 없다면 크리스챤은 단순한 돼지이다』고 방언한 바를 음미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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