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71년은 나의 지나가 버린 인생을 통틀어 가장 의미 있는 한 해였다.
재앙과 영광이 한꺼번에 뒤범벅이 되어 찾아왔을 뿐 아니라 새로운 인생을 살아야겠다는 결의가 다져지고 인생을 생각하는 정신적 자세에서나 세상을 보는 안목에서나 말만의 애국이 아닌 애국의 실천을 터득하게 되었다는 의미에서까지 지난해는 실로 나에게 있어서 제2의 생년이나 다름없는 소중한 해였다.
따라서 신년을 맞이하는 나의 마음가짐은 오직 지난해에 구상하고 다진 내 나름의 값진 일들을 차근차근 펼쳐나가야겠다는 것뿐, 새삼스러울 것이 없다.
우선 지난해에 생각한 것 가운데 으뜸은 올해부턴 빚을 갚는 인생을 살아야겠다는 것이었다. 58년 간을 사는 동안 나는 그 누구보다도 많은 사랑의 빚을 여러 사람한테서 듬뿍 받아왔다. 특히 지난해에는 전국을 뛰어다니는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 이름도 모르는 아낙네, 어디 사시는지조차 모르느 노인네, 그리고 얼굴조차 기억하기 힘든 젊은이들로부터 정말 뜨거운 인정의 보살핌과 아낌을 받았었다.
뿐만 아니라 세계 여러 나라를 돌아보는 동안 곳곳에서 우리 동포들로부터 아낌없는 사랑의 빚을 짊어졌다. 그래서 올해부턴 이렇듯 안팎에서 여러분에게 짊어진 사랑의 빚을 갚는 양심적인 채무 정리를 시작하련다.
그리하여 하느님으로부터 꼭같은 생명을 받았으면서도 슬프고 답답하고 고통스럽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해 나의 능력, 그리고 나의 일신을 쏟아부으려 한다.
억울한 사람을 대신해서 그 억울함을 풀어 주고, 입 다물린 사람들을 대신해서 말해 주고, 더러운 곳을 내 손으로 닦아 주고, 그리하여 약한 사람, 가난한 사람에게 용기와 희망을 보태어 주고 싶은 것이 신년을 맞이하는 나의 결심이다. 나에게 사랑의 빚을 준 분들에게 직접적인 채무 청산을 못할망정 이렇듯 간접적으로 청산하는 인생을 살아 보고자 한다.
부모의 은혜를 그 부모에게 갚는 것이 아니라 그 자식에게 갚는 것이 인간사회의 철리인 것처럼 내가 짊어진 수많은 분들의 사랑의 빚도 그분들에게 갚는 것이 아니라 이렇듯 간접으로 갚을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닌가 생각되는 것이다.
새해를 맞으면서 또 한 가지 소망이 있다면 누가 뭐라 해도 답답하고 침통한 우리나라 형편이 좀 밝고 여유 있게 되었으면 하는 것이다.
우리보다 훨씬 어려운 여건에 있는 나라들도 매우 소망스런 모습이었는데 유독 우리만 조건이니 상황이니 하여 이렇게 어둡고 답답하게 살아야 하는 것인지 이해되지 않는 점이 적지 않다.
이제 너나 없이 입버릇으로 기도할 것이 아니라 순진무구한 마음으로 그리스도의 제단 앞에 엎드려 함께 기도하자. 그리하여 그 순간에 가진 티없는 마음, 지고한 정신으로 자기와 함께 민족의 영광이 있도록 새로운 출발을 다짐하는 민족의 축제 분위기가 올해엔 꼭 가득하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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