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자의 갖추어야 할 제일개조로서「智」를 들고자 한다. 교회는 사권덕에서 지덕을 으뜸으로 삼았고 또 성신칠은 중에서 슬기와 지식의 두 가지 은혜를 들었다. 공자도 군자의 삼대요소로서 지ㆍ인ㆍ용을 말하면서 지자는 불혹이라고 하였다.
위에서 지적한 지덕이나 슬기나 지식이나 지는 모두가 사리의 시비곡직을 분별하는 판단력에 관한 것이다. 따라서 지도자는 무엇보다도 옳고 그른 것을 판별하여 피할 것과 행할 것을 결단하는 능력을 가져야 한다. 이러기 위해서는 지성과 지식과 지혜의 세 가지가 균형 잡혀져야만 완벽에 가까울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지성이란 감정에 흐르지 않고 의지에 고착하지 말고 오직 냉오한 리성에 머무른다는 것을 뜻한다. 이성을 잃는다는 것은 이미 지식이란 글자 그대로 안다는 것이다. 즉 배우고(學) 보고(見) 듣고(聞)해서 사물을 아는 것을 말한다.「아는 것이 힘」이란 말과 같이 알지 못하고서 남을 지도한다는 것은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그러므로 손자의 병법에도「知彼知己면 百戰百勝」이라고 하여 아는 것을 최고의 전술로 인정했다. 그리고 공자는「안다」는 것을 해석하여「知之爲知之不知爲不知是知也」라고 갈파했다. 이는 곧 아는 것은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하는 것이 곧 진짜로 아는 것이란 말이다. 세상에는 모르는 것을 아는 체하는 사람을 흔히 볼 수 있다. 이런 사람은 영원히 그것을 모르고 말 것이다. 많이 듣고 많이 보고 또 아랫사람에게 묻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 도량이 있어야 한다. 자기가 얼마나 안다는 것보다 얼마나 모른다는 것을 아는 것이 참으로 자기를 아는 것이라고 설파한 분도 있지 않는가. 지식은 또 자기를 드러내려는 현학이 되어서도 안 되겠고 남의 말을 경멸히 여기는 독단이 되는 것은 더욱 금물이다. 지도자는 마땅히 일반적 교양의 지식을 넓히고 그 위에 필요한 전문적 지식을 쌓아야만 하겠고 또 그 지식을 겸허하게 적용하는 지혜를 가져야 한다. 그러면 지혜란 또 어떻게 다른 것인가? 원래 지혜는 하느님으로부터 오는 것이라고 한다. 다시 말해서 지혜는 하느님의 은총(천직)로서 받는 선물이라 할 수 있다. 지식은 인간의 노력 여하에 따라 어느 한계까지 도달할 수 있다. 그러나 지혜는 하느님으로부터 타고난 특별한 은총이기 때문에 사람의 힘으로는 좌우되기가 극히 어렵다. 한 례를 든다면 저 유명한 솔로몬의 지혜 같은 것이다. 그 외에도 수많은 선철 위인들의 지혜를 간과할 수 없다. 이런 것들을 다 하느님의 특별한 은사로 치더라도 보통사람의 지도자들도 다같이 어느 정도의 지혜의 은사를 받고 있는 것이다. 요는 이런 은사를 어떻게 잘 계발하느냐의 문제이다. 세상에서 말하는 기지ㆍ재치ㆍ재기ㆍ슬기ㆍ좋은 머리 등등의 은사 즉 소질을 어느 정도 가진 사람은 자기 지식과 경험을 쌓으면서 앞서간 훌륭한 선배 지도자들의 교훈을 부지런히 익히는 가운데 자신의 지도 역량이 성장되고 발휘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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