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젊은 나이의 사람이 동양정신에 취미를 붙여간다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 노릇으로 보이기 쉽다. 그러나 요즈음 외국문학을 전공했고 높은 비평정신을 지닌 몇몇 젊은 지성인들이 어느 한문선생에게 「중용」을 배우러 다닌다는 이야기를 우연히 듣고 나는 반가운 생각이 들었다. 나도 또한 근래에 그 동양정신에 점점 마음이 이끌려 오던 터이기 때문이었다.
나는 어릴 때 시골에서 자라면서 국민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천자문」과 「동몽선습」을 배웠다. 마을에는 서당이 있었고 10여 명의 소년들이 <시고로 맹자왈 부자유친하며>로부터 시작하여 소리를 내어 읽고 또 읽었다. 국민학교에 들어가게 되면 서당공부는 일단 중단하게 된다. 그 뒤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하는 소년들은 다시 서당으로 돌아가서 「명심보감」 「통감」 「소학」 이런 순서로 계속 한문 공부를 하는 애들이 있었다.
중학교에 진학하면서 아주 도회로 떠나와 버린 나는 그 뒤 서당에 다시갈 기회가 없었다. 그리고 우리의 국사와 동양사ㆍ세계사를 배우며 장성한 후로는 한문에 대한 반감을 갖게 되었다. 우리의 선조들이 중국에 대하여 사대사상을 지녀온데에 대한 감정적인 반발이었다. 이 반발은 지금도 가셔진 것이 아니며, 따라서 이두문자로 씌어진 우리의 향가문학에 긍지를 느끼며 노자에 徐花譯을, 공맹에 퇴계 율곡을 견주어보며 무엇보다도 한글의 창제에 가슴속 깊은곳으로부터 감사를 느끼고 있기도 한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미 오래전부터 편협한 국수주의적 감정을 떠나서 동양적 문화의 테두리와 그 특성을 긍정하게 되었다. 서양에서도 덴마크나 영국이 희랍이나 로마의 위치를 갖지 못했음에 컴플렉스를 느낄 필요가 없듯이 문화라는 것은 공유의, 선의의 자산이 아니겠는가.
그러다보니 고향 집안의 어른들이 지닌 정대한 인륜과 동양의 고전들이 지닌 깊은 지혜를 함께 사랑하게 된다. 8ㆍ15 해방 후 밀려든 서구문물의 지배 아래서 오늘날 우리의 사회풍속은 야박하고 예의없고 기품이 없게 되어버린 점이 너무도 심하다. 여기에서 우선 아쉬워지는 것이 동양의 대인(군자) ㆍ덕ㆍ 유순 이런것들이다. 서로가 「개새끼」라고 입버릇처럼 욕을하며 돌아가는 얼굴들을 가만히 지켜보노라면 그 얼굴들이 바로 소인의 전형임을 발견하게 된다. <큰사람은 두루 화합하되 함부로 뇌동하지 아니하고 소인은 항상 남에게 또는 스스로 雷同만 할뿐 和合할줄을 모른다.(君子和而不同 小人同而不和) 여기에서 모든 분야의 사람들이 서로 욕되게 분열하여 자기의 분수를 잊고 남만을 비판하게 되는것이 아닐까.
또<덕이 있으면 고립되지 않는다. 반드시 동지가 생기는 법이다>(德不孤必有隣) 한 것이 동양의 금언(金言)인데 오늘 우리들 속에서는 훌륭한 생각과 뜻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동지를 규합할 실천적 능력이 없는 인물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리고 실천의 방법 중에는 다만 <정의로써 적을 심판한다>는 <以直報怨>도 있지만 <굳고 강한 것을 공격하는데는 부드러운 물보다 더 나은것이 없다>(天下莫柔於水而攻堅强者 莫之能勝) 고 한 융통을 생각하여, 부딪치다가 좌절했을 때엔 상심만 하지말고 땅 밑으로 뚫고 옆으로 돌면서, 그리고 가로막은 언덕의 흙을 용해하며 즐거운 마음으로 흘러갈수도 있을것이다. 모든 죽어가는 것은 굳어진다. 풀잎도 사람의 몸도 죽어갈수록 굳어진다. 부드럽고 여유가 있는 것은 곧 신선한 생존의 증거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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