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지도자에게 공통적으로 필요한 조건의 하나로서『信』을 들지 않을 수 없다. 신은 믿음을 말하는 것으로서 사람과 사람 사이에 상호 간의 믿을이 없으면 인간 사회가 이룩될 수 없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그러므로 동양의 최고 이상인 5륜에서 붕우유신을 빼놓지 않았다. 이것은 평면적인 인간관계의 성립 조건을 말한 것이지만 더 나아가 치자(지도자)와 피치자의 관계에도 신을 가장 중요한 것으로 가르쳐 준 것이 곧『民無信不立』이란 공자의 교훈이다. 그 제자의 한 사람이 정치의 요결을 물었을 때에 족식ㆍ족병ㆍ민신지의 3대 요건을 말했다. 그때 그 제자가 만약에 그 세 가지를 다하지 못하고 한 가지밖에 할 수 없을 경우엔 무엇을 택할 것인가고 다그쳐 물었을 때 공자는 서슴치 않고『民信之』라고 대답하면서 백성이 만약에 위정자를 믿지 않는다면 그 나라는 성립될 수 없다고 단정하였다. 이것은 비단 정치하는 지도자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고 모든 지도자에게 공통된 교훈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그러면 지도자가 지도 받는 자로부터 어떻게 해야 신임(信賴)을 받을 수 있을까의 문제를 대략 다음 세 가지의 항목으로 생각해 보고자 한다. 첫째로 지도자 자신이 굳건한『신념』을 가져야 하겠다. 신념이란 자기 자신의 이상에 대해 갖고 있는 확고부동한 견해 내지 소신을 뜻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朝聞道면 夕死라도 可타고 할 만한 의지를 말하는 것이다. 만약에 지도자가 신념이 박약하여 때에 따라 그 소신을 변경할 경우에는 아랫사람들은 갈피를 잡을 수 없이 그들의 일에 대한 확신이 설 수 없다. 지도자가 도중에서 지휘 명령서는 극심한 혼란에 빠지게 마련이다. 다음은 지도자는『信義』를 지켜야 한다. 신의란 남과 일단 약속한 것은 꼭 지키는 의리가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약속을 어기는 사람을 가리켜 신용이 없는 자라고 한다. 그러나 신의는 신용보다도 좀 더 도덕적 책임이 강조된 뜻으로 느껴진다. 남의 위에 있어서 아랫사람들과 맺은 약속을 마치 헌신짝 버리듯이 번복한다면 이는 통상적인 신용의 문제라기보다 도의적인 책임문제로 볼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아랫사람에 대해 신의를 지키지 못하는 사람은 지도자의 자격을 완전히 상실한 것이다.
끝으로 한 가지만 더 첨가한다면 그것은 곧 부하들을『신임』하는 문제이다. 사람이 남의 신임을 받으려면 먼저 남에게 신임을 주어야 한다. 불신사조가 충만하고 있다. 이런 시대에 어떻게 남을 믿을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 문제이다. 그렇지만 원리대로 말하자면 역시 남을 먼저 믿고서야 자기를 믿으라고 요구할 권리가 있을 것이다. 채근담 저자가 이미 갈파한 바와 같이 내가 먼저 남을 믿었을 때엔 남이 비록 나를 속였을지라도 나만은 홀로 성실한 것이고 또 반대로 내가 먼저 남을 의심했을 때엔 남이 반드시 속이지 않았을지라도 나는 이미 스스로를 속인 셈이다. 어차피 서로 믿지 않고서는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없을 바에는 서로가『먼저 믿기』로 믿음을 교환했으면 하는 염원이 간절하다. 더구나 지도하는 자와 지도 받는 자 사이에 상호 간의 신임관계가 성립되지 않는다면 거기는 시기와 갈등과 불안의 온상이 자라고 말 것이다. 모름지기 지도자는 무조건 아랫사람들에게 신임을 주고 믿고 맡겨야 하겠다. 그럼으로써 부하들은 상사의 신임에 신복하면서 하는 일에 보람을 느끼게 된다. 사람을 쓴 이상에는 의심하지 말고 의심할 바엔 아예 그 사람을 쓰지 말라는 공자님의 옛 말씀도 있거니와 그보다도 더한 것은 유다스가 배신까지 할 줄 알면서도 끝끝내 믿어 주신 예수님의 최고 표양을 잊지 말아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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