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당에 들어설 때마다 성큼 눈앞에 다가오는 제대는 나에게 많은 감회를 준다. 성당에서 가장 높고 거룩하고 바른 곳에서 한결같이 미사집전의 중심이 되는 곳….
우리집은 불교ㆍ무속신앙ㆍ개신교 등으로 4대에 걸쳐 열세 식구가 서로 다른 종교를 신봉한 채 대가족을 이루며 살았다.
그러다 할아버지의 결단과 온가족의 일치로 선택한 종교가 바로 가톨릭. 그때부터 지주는 주님이 되어 주셨고 23년 세월동안 우리 가정이란 배를 이끌어왔다. 일교 후 23년! 그것은 참으로 격변의 세월이었다.
제3차 꾸르실료를 수료해 꾸르실리스따였던 아버지께서 수영을 하시다 심장마비로 돌아가셨다. 그 후 우리가정에는 엄청난 시련이 몰아쳐왔다. 그로 인해 수십 년 살던 1백여 평의 대구 삼덕동 옛집은 팔려 우리식구들은 분가해야 했다.
그리고 2년이 안되어 할아버지 댁의 화재로 증조할머니, 할아버지께서 심한 화상을 입고 병상에서 고통을 받으시다가 1년을 두고 각각 돌아가셨다.
나에게 있어서는 중1때 아버지께서, 중2때 할아버지, 중3때 증조할머니께서 각각 사고로 돌아가신 것이다. 순식간에 부유한 생활에서 전혀 체험할 수 없었던 차가운 현실이 눈앞에 다가왔다.
까까머리 중학교 철부지에다 내가 상복을 입고 첫 흙을 받아 관위에 뿌리던 회색빛 하늘은 어찌 그리도 원망스러웠든지.
많은 시련 속에도 어머니는 강철 같은 신앙과 의지로 온갖 고초를 물리치고 우리 4남매를 키우셨다. 30중반의 얼굴은 어느새 환갑을 눈앞에 둔 초로의 모습이 다 되셨다. 수많은 분들의 염려와 기도도 잊을 수 없다. 이런 세월의 풍상 속에서 성당은 특히 제대는 변함없이 우리가 지향하고 바라보며 모든 힘과 용기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중심이었다.
제대 앞에서 열심히 복사를 서던 나와 동생, 누나의 혼배성사, 그리고 조카와 내 아이의 유아세례가 제대에서 이루어졌다. 증조할머니, 할아버지, 아버지의 종부성사와 혼인서약 갱신식에 이르기까지 많은 성사가 바로 그 제대 앞에서 이루어졌다. 단 한 번도 교적을 옮긴 적 없이 ….
『내 아들 가슴에도 십자가 표적 달고 크거든 되어다오, 훌륭한 꾸르실리스따』라는 노래처럼 남동생 요한은 아버지 뒤를 이어 꾸르실리스따가 되었고 마침내 대구 성 김대건 기념관에서 사제서품을 받게 되었다.
우리 가정에서 있어서는 참으로 감개무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때 몸부림치며 아버지의 사고 현장에서 억지로 차에 실려 오시던 어머니의 눈에 온 차창 밖 가득히 피어난 한없이 따라오던 그 영롱한 무지개는 주님의 약속이셨던 것일까?
『나 너와같이 있으니 두려워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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