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다 어린 시절의 추억이 있고 또 있어야만 한다고 본다. 사실 누구나 어린 시절의 그 많은 추억거리를 이루 다 헤아릴 길이 없겠지만 추억중의 추억이라면 역시 부모형제와 연관된 추억이라 하루 있을게다.
특히 부모님과 연관된 추억거리를 ….
나의 어머니는 안타깝게도 내가 부제로서 지내던 마지막 여름방학 때, 그러니까 나의 사제서품 5개월 정도를 남겨놓고 세상을 떠나셨고 현재는 아버지만이 생존해 계신다.
신앙적으로 보면 나는 2대째 신앙생활을 하시는 태중교우로 세상에 태어난 것이다. 학벌은 비록 높지 않으셨지만 신앙적 가르침만은 철저하게 해주신 어머니는 막내인 나를 국문도 깨치기 전 첫 고백ㆍ첫영성체를 할 수 있게 해주셨다.
자상하시면서도 근엄하신 아버지는 학교공부는 물론 신앙생활을 철저히 하도록 생활로 가르치셨다. 아니 학교공부에 열중하는 그 이상으로 신앙에 대한 공부나 생활을 더 빈틈없이 하도록 하셨다. 어느 때인가 저녁 식사 후에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재미에 가족들이 모두 모여 바치는 저녁기도에 빠졌다가 아주 호되게 꾸지람을 들은 적도 있었다. 아마도 부모님의 그런 솔선수범적인 신앙교육이 내가 국민학교를 졸업하고 즉시 소신학교를 지망하게 했으리라.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그때도 역시 저녁기도 때였다. 당시에는 온가족이 한집에 살고 있던 때이니 열서너 식구가 한방에 모이면 그야말로 방안이 그들먹했다. 전과 다름없이 설거지 끝내고 방에 들어온 형수들이 잠시 숨을 돌리면 삼종기도부터 시작하여 저녁기도ㆍ묵주기도로 이어졌다.
지금이야 뭐 20분정도면 다 끝나게 되는 기도시간에 불과하지만, 그때는 저녁기도가 지금의 것과는 달리 길어져 저녁기도만도 20분은 소요되었으니 줄잡아 40분은 족히 걸려야 하는 순간이었다.
남자들은 「계」를 하고 여자들은 「응」을 받고…. 저녁기도(만과)의 앞부분이 끝나고 성모호칭기도(성모덕서도문)가 바쳐지는 순간일라치면, 지금은 안타깝게도 정신착란자의 비수에 유명을 달리한 큰형수님 덕분에 가끔 기도 중에 웃어야 할 때가 있었다. 대식구들을 건사하느라 피곤하시기도 했겠지만 원래가 초저녁잠이 많은 분이셨으니까….
『천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그리스도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성마리아』『우리사』『천주의 성모여』『…ㆍ』
잘 진행돼 나가다가 갑자기 『우리를 위하여 빌으소서』가 『우리사』로 둔갑하고, 좀더 진행되노라면 그나마도 아주 조용해진다. 큰형수님이 졸고 있으니 무안한 사람은 그 남편인 큰형님이라. 순간 등잔불은 형님 손에 의해, 졸고 있는 큰형수의 이마 앞으로 바짝 옮겨진다.
멋도 모르고 계속 졸고 있던 형수님은 그만 등잔불에 머리카락 몇 개를 희생시키고는 번쩍 잠을 깨어 『우리를 위하여 빌으소서』를 되찾아 기도에 일하곤 했다.
이렇게 비록 졸면서라도 기도를 꼭 바쳐야 한다는 것이 우리의 웃어른들이 심어준 신앙의 유산이건만, 졸면서 기도하느니 차라리 하지 않겠다고까지 하면서 자신들의 게으른 신앙생활을 정당화하려 대드는 현대의 많은 신앙인들을 생각하면 그 신앙관을 참으로 이해하기도 어렵다.
사실 기도를 아주 안 바치는 것 보다야 비록 졸면서라도 바치는 편이 훨씬 더 낫지 아니한가! 일부러 졸지 않는 한말이다.
이렇게 부모님의 솔선수범적인 삶이 자녀들에게는 잊지 못할 추억이요 자랑거리로 간직된다. 뿐만 아니라 그것은 자녀들 삶의 한평생을 좌우하는 요소임에 틀림없다.
그러기에 교회는 자녀교육의 가장 근본적인 권리와 의무가 부모에게 있다고 가르친다. 물론 자라나는 세대의 교육에 대한 책임과 의무가 한 국가나 사회 또는 교육을 직접 책임지는 교육자들에게 주어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가장 중요한 책임자는 다름 아닌 부모들이다. 자신들이 지니고 있는 중대한 책임은 망각하고 사회 환경과 교육자만을 탓해서는 절대 안 된다. 물론 발전을 위한 냉철한 비판이 불합리한 것도 아니요 불필요한 것도 아니지만 , 거기에는 먼저 부모로서 자녀에 대한 교육의 책임을 반드시 전제로 해야만 한다는 점이 수반된다. 『양친은 자녀에게 생명을 주었으니 자녀를 교육해야 하는 중대한 의무를 진다. 그러므로 양친은 자녀의 첫째이며 주된 교육자로 인정되어야 한다』(그리스도교적 교육에 관한선언 3항).
가끔 나는 빗나간 자기아이를 두고 『우리 아이는 정말 왜 그런지 모르겠다』는 탄성을 발하는 부모를 본다. 나는 방문해 보고 싶다. 『정말 왜 그런지 몰라서 그러느냐』고. 자기의 자녀가 빗나가 있다면 그것은 곧 부모로 자신의 탓이라고 못 박는다면 좀 지나친 표현일까? 부모된 입장에서 먼저 『내 탓이요』할 수 있어야만 하지 않을까?
지식적인 교육은 학교에서 거의 모두 이루어진다 하겠지만 인간완성을 지향하는 전인교육으로써의 교육에 부모만이 책임지고 줄 수 있는 것들이 있지 않은가! 삶의 기쁨ㆍ보람, 시련극복의 용기와 인내, 무엇보다도 하느님의 사랑으로 살아가는 삶의 지혜 등등.
날이 갈수록 대형화되고 비인간화하는 끔찍한 청소년들의 비행을 보고 암담함을 공감하지 않을 수 없는 사회현실이다. 그러나 현실을 한탄만하기에 앞서 먼저 문제의 기성세대, 문제의 부모 밑에서 이 시대의 문제아가 속출하게 된 것은 아닌지를 살펴보는 냉철한 자의식속에, 정치인이건 기업가이건 문학인이건 교육자이건 종교인이건 모두가 청소년들의 공동부모가 돼야하지 않겠는가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기성세대들의 공동자녀인 청소년들의 문제는 기성세대가 먼저 변화됨으로써만이 그 해결의 실마리를 빨리 잡을 수 있겠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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