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도 울고 땅도 뒤돌아 앉게 한 북경의 유혈참극을 보라. 이는 인간의 어떠한 언어로도 변명될 수 없는 사악한 인간문명의 본질을 고발하고 있다. 우리는 이를 통해 동서양을 막론하고 하늘을 향해 삿대질해온 인간의 오만이 결국 아벨의 피를 요구한 카인의 광기로 물들어 왔음을 확인하게 된다.
「피의 일요일」로 불리어지게 된 1989년 6월4일, 북경의 천안문광장은 여명이 밝기도 전에 거대한 무덤이 되고 말았다. 그 무덤 속에는 수천의 고귀한 생명과 20세기 군사문화의 상징을 이루어온 탱크와 장갑차가 함께 묻혔으며 묘비명이 되고만 「자유의 여신상」이 사회주의의 이상과 함께 묻혀 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이와 더불어 동양문명의 긍지와 양심이 함께 매장되어 버렸다는 사실이다.
북경의 비극은 사회주의혁명의 한계를 드러내었다는 점에서 헝가리ㆍ체코ㆍ폴란드 등 동구공산권의 자유화 의거에서 빚어낸 비극과 유사하지만, 정권안보를 빙자한 동족의 손에 의해 저질러진 만행이란 점에서 오월 광주의 비극을 닮았다. 이제 이들을 지켜보는 일류의 가슴은 더욱 막막하다. 그것은 정치개혁요구를 반혁명으로 단죄하고 백만 명의 고귀한 목숨을 「한줌」으로 밖에 보고 있지 않은 권력자들에 우려되기 때문이다. 마치 아르헨티나와 베트남 그리고 캄보디아의 경우처럼 반혁명 타도의 구호 속에 질식하는 인권매몰의 참극이 뒤따를 것은 뻔한 이치이다. 천안문광장의 유혈극은 다행히도 고르바쵸프의 북경방문으로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끝에 이루어졌기에 적나라하게 드러났지만, 그 대가를 추궁하여 중국대륙 곳곳에서 벌어질 숙청극은 「죽의 장막」의 빗장 저 너머에 묻혀버릴 것이 또한 뻔하지 않겠는가.
우리는 지난 4월15일 호요방(胡耀邦)의 사망을 계기로 촉발된 중국대학생들의 민주화요구 시위가 지배이데올로기에 의해 일방적으로 희생될 수 없는 「인간다운 삶」의 선택을 위한 외침이었음을 강조하였다. 그 후 7주간이나 중국 전역으로 확산 된 「북경의 봄」은 계엄군의 탱크를 저지한 인간사슬에 의해 열매 맺을 것으로 기대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결국 야음을 틈타 인민을 배반한 「인민의 군대」에 의해 「북경의 봄」은 열매는 고사하고 꽃도 피워보지 못한 채 짓밟혀지고 말았다. 이제 중국의 사회주의 혁명은 중국의 인민과 인민해방군이 물과 물고기로 비유되어왔던 긴밀한 유대마저 파괴됨으로써 「실패한 혁명」으로 전락할 위기에 봉착하였다. 그것은 중국의 근대화를 가로막아온 군벌들의 난립근거를 청산한 사회주의 이념이 또다시 군부를 등에 업은 권력투쟁에 의해 희생되어 버리는 역사적 아이러니로 희귀하고 있기 때문이다.
폴란드의 경우를 보자. 폴란드 자유화운동의 요람인 그다니스크에서 1970년 12월 대규모적인 노동자파업 및 자유화 요구 시위가 발생, 대규모 유혈사태에 직면하였다. 결국 군대가 투입되었지만, 『폴란드 군대는 폴란드 노동자들에게 발포하지 않을 것』임을 선언하여 「국민의 군대」로 신뢰받게 되었다. 그 결과 10년 후인 1980년 자유노조운동의 확산이 소련의 군사개입을 불가피하게 하였을 때 소련군보다는 야루젤스키의 계엄비상사태를 수용하는 선택으로 우회할 수 있었던 것이다. 최근 폴란드의 자유노조가 총선에서 승리함으로써 공산당의 1당 독재를 사실상 종식시키고 독자적인 민주화, 즉 체제개혁을 추진할 수 있는 힘과 여유를 지니게 된 것은 그와 같은 역사적 체험에 근거한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오늘의 중국은 어디로 가는 것일까?
북경의 유혈참극은 「인간의 얼굴을 한 문명」을 추구한 중국의 사회주의가 「인간의 얼굴을 한 야만」의 모습으로 뒤바뀐 모습을 보여준다. 그것은 사회주의를 내 세우건 자본주의를 내세우건「이념의 바벨탑」을 쌓고자하는 인간의 욕망이 결국 자기파멸로 내닫는 것임을 증명한다. 인간이념의 파멸을 상징한 바벨탑의 잔해 속에서 『1989년을 중국 역사에서 지워버리고 싶다』고 절규한 중국대학생의 분노와 좌절, 그리고 그 공포를 누가 달래줄 것인가. 또 한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내세워 국가권력의 통치를 정당화시켜온 중국 공산당이 더 이상 프롤레타리아 즉 인민의 당(黨)일수 없다는 사실이 폭로된 지금 남게 되는 진실은 무엇인가.
그러나 우리는 천안문광장에 뿌려진 젊은 피가 결코 헛된 것이 아님을 안다. 더구나 그것이 단순히 어리석은 무덤일 수만도 없다는 사실을 확산한다. 비록 권력을 손에 쥔 사람들에게는 빈 무덤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우리의 눈에는 그리스도의 부활을 증거하는 영광의 무덤과 다름없는 것임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그 무덤은 결코 비어있는 것이 아니라 중국의 진실이 살아 숨 쉬고 있는 양심의 광장인 것이다.
혹시 천안문광장의 민주화열기가 충천했을 때 두려움에 떨다가 한차례 핏빛무지개에 놀랐던 가슴을 쓸어내리는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은 부활의 기적을 모르는 사람들이다. 그들의 눈에는 환상의 바벨탑만이 영원한 것처럼 비칠 런지 모르나 그들이야말로 회칠한 무덤으로 단죄 받을 자들이다.
참된 민주화는 하느님 모상의 회복을 의미한다. 이제 천안문광장의 마르지 않는 피로써 세례를 받은 중국대륙의민주화운동은 하느님의 모상을 회복할 때까지 끊임없이 지속될 것이다. 칠흑 같은 어둠속에서 산화한 그들의 희생이 결코 헛되지 않을 것임을 믿으면서, 이름 모를 젊은 그들의 명복을 빌어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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