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시 행복해진 우리집, 아버지는 대한생명보험회사에 다니시고 형은 인쇄공장으로 엄마는 집안일을 하시게 되어 바야흐로 우리는 다시 찾은행복에 웃음을 활짝 피웠습니다.
많은 시간이 흘러갔습니다. 어느날 큰집의 둘째누나가 부산으로 취직되어 왔습니다. 누나는 나를 무척 귀여워해주며 국제시장 등을 데리고 다니며 과자랑 옷도 사주며 자주 오시더니 얼마후 우리집 옆에조그마한 점포를 얻어 구멍가게를 차렸습니다.
누나가 온 후 나는 학교 가는시간외엔 항상 누나집에서 놀았는데 그만큼 아들이 없는 곽씨집안이라 무척 귀여움을 받았습니다.
그럭저럭 이런생활속에 내가 6학년 졸업을 할 즈음-그해 추운겨울 우리집에는 다시 또 풍파가 다가왔습니다.
고향의 할머니께서 눈이 아파 큰어머니와 부산엘 오셨는데 그 일이 시초가 되어 또 다른 커다란 압력이 보이지 않게 다가왔습니다.
이유는 모르지만 그날밤 우리집에서는 큰어머니와 어머니의 고함소리와 함께 싸움이 시작, 결국 자정이 가까와 아버님이 큰어머님과 누나집으로 가신 후 운명의 시각이 닥쳐온 셈입니다.
밤이 깊어 동생들은 다 자고 환한 흘안엔 어머니와 나,
무거운 공기속에서 어머니는 내 손을 잡고 훌륭한 사람이 되고 동생들을 잘 지키라고 했습니다.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자꾸만 우시는 엄마를 따라 나도 울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것이 나와 엄마의 마지막 대화요 마지막 내가 본 엄마의 얼굴일 줄이아….
잠시후 어머니는 누나집에 갔다오마 하시며 나가시고 나는 방에 들어와 잠이 들고 말았습니다.
이튿날 아침 눈을 뜨니 옆자리에 계셔야 할 어머니가 없었습니다. 누나 집을 위시하여 온 동네를 두루 찾아 보았으나 어제밤 나가신 엄마는 돌아오지 않고 아버님 역시 맥이 빠진채 찾아봤으나…
『며칠후 돌아오실거야』하시며 우리를 달래는 아버지와 동생을 달래는 내가 울고 지낸 며칠밤 뒤 할머니와 큰어머니는 고향으로 가시고 돌아오지 않는 엄마를 찾아 누나와 나는 서울로 갔습니다.
서울에 꼭 엄마가 있어주길 바라며 온 하얀눈 내리는 서울거리, 외할머니집과 이모집 그리고 엄마 친구집 등 갈만한 곳은 모두 찾아보았지만 계셔야할 엄마, 보고싶은 엄마의 얼굴은 없었습니다
실망을 가득안고 다시 부산으로오니 동생들의 울음소리 그칠새없고 형마저 군대로 가고 없었지만 이런생활속에 나는 졸업을 했습니다.
운동장에 선 나, 남들은 부모와 누나 형이 있지만 쓸쓸한 나의 주위, 어린나에겐 너무나 불행이 많았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어머니가 나간지 28일만에 집앞 해변가에서 웅성거리는 사람들 소리, 그곳엔 한 여인의 시체가 밀려와 있었습니다. 오래 물속에 있었는지 몸은 부어 있었고 또 고기들이 뜯어 먹어 얼굴도 분간할수 없었습니다.
누구라고도 할수 없는 마음, 어머니가 아니길 빌었지만 옷입은 것을보면 엄마같기도 한 그 시체를 보고 나는 집으로 달려왔습니다.
아버님을 따라 해변가로 다시온 나는 모든것이 엎어지는것 같고 탈피하고 싶었습니다. 맥이 없어보이는 아버지 그저 침묵한 지키시던 그때의 아버지도 결국 땅을 치며 대성통곡 하셨습니다.
그러나 난 사실을 부인했습니다. 어머니는 꼭 돌아오실거라 믿고 있었기에 우는 동생을 달래며 울지 않으려 했지만…
상가집으로 변한 우리집, 군에간 형님 도오고 서울서 외할머니와 이모님도 오셨습니다. 넋을 잃은 사람모양 서있던그때의 형님 얼굴, 모두 어머님 영전 앞에 엎드려 울었습니다. 집밖에서 죽은사람은 집에 못들여온다 해서 밖에 모셔진 어머님 영전, 3일장이 끝나고 영구차에 오르는 날 모두들 다 울었지만 나는 결코 울지 않았습니다.
누구보다 어머니의 사랑을 받고 자란 나! 그랬기에 마음속으로 오직 돌아오시기만 바라며 꼭 살아계실거라 믿고싶었습니다. 울지않는 나를 보며 불효라 말하는 사람들 그러나 나는 결국 울지 않았습니다. 누구도 원망할수 없는 지금 그 사람들 말과 같이 불효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마지막차에 오를때 형은 관 앞에 꿇어앉아 일어설줄 몰랐습니다. 차가 당감동 화장터에 도착하자 우리처럼 울음진 얼굴들이 거기엔 많았습니다.
어머니의 관이 검은막속에 들어가고 가랑비 내리는 회색 하늘 가운데 검은 연기가 가물 가물 나오고 있고 자식들 걱정으로 하늘로 오르지 못하는 엄마의 연혼인양 그 연기는 땅으로만 깔렸습니다. 뼈만 남은 엄마의 몸, 유골을 고르면서 그제야 울음보가 터진 나, 하늘도 울고 땅도 울던 그날 유골보관소에 엄마를 두고 돌아서는 내 앞에 지쳐서 맥이 빠진 동생들이 서있었습니다.
또 얼마가 지나 아버지는 우리를 데리고 고향열차에 몸을 실었습니다. 가고 싶지 않은 곳, 형은 큰집식구 말 잘 들으라면서 울며 떠나가고 어린 우리는 한 맺히는 큰집의 구박속에 다시 던져졌습니다.
우리를 데려다 놓은 아버지, 눈총사납게 무서운 큰엄마, 동생들은 아침 일찍 일어나 집안 청소를 해야하고 나는 밥만 먹으면 지게를 지고 나무하러 가야했습니다.
떠오르는 어머님 생각 큰소리로 목메어 부르며 울부짖는 내게 메아리만 허공중에 찰뿐 하루해가 저물면 반짐도 못되는 나뭇짐을 지고 그나마 무거워서 끙끙대며 돌아오면 할아버지와 큰어머니의 꾸지람만이 기다리고 그저 매일매일이 꾸지람속에 한달이 지나가 버렸습니다
다시금 눈물의 한터고개를 넘을날이 왔습니다. 더이상 어린마음에 견디기 어려웠습니다. 옛날 보고픈 엄마를 찾아넘고 넘던 당시의 눈물고개 나는 굳은 결심을 하고 집을 나섰습니다.
『나도 돈을 벌어 큰집보다 더 잘살아야지』아침밥을 든든히 먹고 동생들을 달래며 돌아서는 나에게 매달리는 동생들…. 부디 잘 있으라고 부탁하는 내 맘 속에 한없이 쌓인 울분이 소리없이 내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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