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의 것은 오늘의 것이 아니요 오늘의 것은 내일의 것이 아니다」라는 말이 있다. 이것은 과학기술 사회가 나온 오늘의 시대 모습을 두고 한 말이리라. 오늘의 역사는 옛것은 가고 아직 새것은 정립되지 못하고 있다. 지금 우리는 새역사 창조를 위한 혼돈과 창조의 작업속에서 신음하고 있다. 교회 역시 지상에 발을 디디고, 인간을 위하여, 인간과 함께 살고있기에 예외가 아니다. 오늘의 교회가 역사의 화석이 되지않고 전통의 체취만 핥고 살지않으려면 교회의 내부와 신학적 신앙의 내용에 변화가 었어야 한다. 진정, 교회는 급격히 세속화 하는 사회에 전파해야할 복음의 내용이 무엇인지 탐구하는 과학도로서의 진지한 연구자세가 아쉽다. 지금이야말로 시대가 요청하는 자기사명을 다시 검토하고 존재이유를 다시 발견하지 못하면 교회는 인류의 역사에 먹칠을 할것이다.
오늘의 젊은이들은 전통의 지팡이에 의지하여 흐느적이는 늙은거구의 교회를 원치 않는다. 늙은이는 현실에 무기력하고 창조의 작업능력이 없다. 늙은이는 자기의 여생과 재산보호에 신경이 피로하기 쉽다. 늙은이는 고루한 전통의 위엄과 조직강화에 혈안이 되기 쉽다. 교회가 늙지 않으려면 인간과 사회에 봉사하고 창조하는 본래의 생명력을 쉬지말아야 한다. 젊은이는 명석한 관찰력과 창조하지 않고는 못배길 생명의 발전속에 살고 또 살기를 원한다. 우리 젊은이들은 교회의 목적이 인간으로 하여금 신을 알게하고 예배하며 윤리적 생활속에서 인간이 구원을 얻도록하는데 있다는 것을 알고있다. 진지한 사회의 변화는 인간 내면의 심연으로부터 구원을 받는데 비롯된다는 것도 잘 안다. 교회가 사회적 문제를 분명하게 말할수 있고 사회의 윤리적인 환경을 조성하는 역할을 소유하고 있음도 확신한다.
우리는 영생과 하느님 나라를 믿고 하느님의 의(義)를 하느님 나라에서 구한다. 우리는 교회가 경제를 떠나서는 살수 없다는 것과 운영을 위한 경제적 의무감도 받아들인다. 그러나 우리는 그리스도교의 역사가 수직선의 장대역사가 아니라 수평선과 수직선의 교차를 상징하는 십자가의 역사를 믿는다. 수직선은 대지에 발을 붙이고 사는 인생과 신과의 관계이지 결코 입법자의 권위를 호령하고 겁주는 지휘봉도 아니요 재판관의 몽둥이도 아니다. 수평선은 인간과 인간의 관계요 신앙의 대사회적 관계와 주변을 바라보게 하는 역사의 눈길이다. 교회는 인간에게 꽃나무를 키워주는 정원사가 아니다. 현실사회를 외면하고 영생과 천국만을 팔며 교조적 맹앙(盲仰)을 외치는 교회는 광신조합이다. 우리는 전통과 권위의 신화를 노래하며 현실의 긴급동의에는 얼음같이 차갑고 영생의 문제에만 뜨거운「불타는 얼음」같은 교회에 반항한다. 우리는 교회의 사회참여가 인류에게 인생의 진정한 의미를 가르쳐주고 그렇게 살도록 이끌어 주는데 있음을 안다. 그러기에 교세확장을 위한 기업적인 전교사업이나 광대의 눈물같은 구호사업을 반대한다.
우리는 생활로 신앙한다. 교회는 각사람이 그리스도를 향한 회심과 결단을생활로 응답하도록 가르치고 우리는 그 신앙에 숭복한다. 그래서 교회가 그리스도교인의 사회생활에 대한 구체적 실천방안을 제시해주지 못할때 우리는 반항한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가난하고 약하고 억눌린 사람들에게 주신 기쁜소식을 현실안에서 실감한다. 오늘날 인간은 인간에게 늑대가 되고 있음을 누가 부인하랴. 교회가 인권을 옹호하는데 태만하고 사회의 불평등과 사회악을 제거하는데 무기력하고 무능할때 복음이 썩은 개고기를 씹히우듯 뱉아 버려지고 있다고 우리는 통곡한다. 우리는 우상을 파괴하는 교회의 예언자적 소명을 믿는다. 그리스도의 일생은 제도의 우상 권위의 우상 정치적 우상 경제의 우상 육체의 우상 파괴하는 혁명의 일생이었다. 교회가 우상을 파괴하는 작업에 소홀하다면 기회주의적 방관자들의 도덕적인 공동묘지가 될것이다. 인생은 생명이다. 생명은 성장한다. 생명은 피와 땀과 눈물의 것이다. 생명에 피가 없으면 주검이요 땀이 없으면 성장이 없고 눈물이 없으면 진실하지 못하다. 피는 무기도 폭력도 없다. 땀은 안일이 아니다. 눈물은 자위의 평화가 아니다. 피를 아는 자는 폭력하지 않는다. 땀을 아는 자는 현실을 도피하지 않는다. 눈물을 아는 자는 고독하지 않다. 우리는 생명을 안다. 생명은 죽일수도 죽을수도 없다는 것을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보았다. 우리는 그리스도가 보여준 죽음의 부정을, 반항의 미덕이 무엇인가를 목격했다. 이제 우리는 우리의 소시민적 설합속의 지성을 버리자. 교만한 엘리뜨도 되지말자. 평화를 가장한 벙어리 냉가슴도 풀자. 사랑을 분칠한 종이위의 통곡도 멈추자. 부정한 것은 부정하고 반항할 것은 반항할줄 아는 미덕의 인간이 되자. 우리는 폭력보다 비폭력의 인내하는 호소를, 현실의 승리보다 영원의 승리를, 인간의 영광보다 신의 영광을 믿고 노래하자. 죽어서 살은 십자나무의 의미를 움켜쥐자. 한마디의 진실이 온세상보다 더 중요하다면 우리는 한마디만 말하자 『젊어서 죽은 예수의 일생이 우리의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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